해외 이념·문화 침투 경계…어린이 콘텐츠는 일부 허용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북한이 학교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서방의 사상·문화 유입을 경계하고 엄격히 단속하는 북한의 정책에 대치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지난주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평양에 있는 엘리트 학교 '세거리초급중학교' 교실에서 10대 학생들이 2013년 디즈니의 흥행작 '겨울왕국'을 한글 자막과 함께 시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실 속 칠판을 자세히 보면 겨울왕국에 나오는 대사인 "Do you wanna build a snowman?"(눈사람 만들래?)이 적혀 있다.
다큐멘터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독려로 영어 수업을 방식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겨울왕국으로 영어를 가르친 여교사는 문법 중심에서 회화 중심으로 수업을 바꾼 뒤 학생들이 수업에 더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NK뉴스는 통제된 학교에서 미국 영화를 수업 보조재로 사용한 것을 두고 북한이 해외 미디어 규제를 완화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검열을 거쳐 영화를 편집했거나 특정 장면만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세고리학교는 북한의 고위 간부 자녀들이 다니는 엘리트 학교이기도 하다.
북한 시민들은 해외 영화나 방송, 음악 등을 접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국가의 승인 없이 디즈니 영화 같은 해외 미디어를 시청하면 처형당하거나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0년 '제국주의자들'이 글과 음악, 일상용품 등에 사상·문화를 교묘히 숨겨 퍼트리려고 한다며 해외 문물 유입을 경계한 바 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북한에는 영화, TV, 머리 스타일 등 외국의 영향을 감시하는 조직 '그루빠'(단속원)가 활동한다면서, 음란물 시청 등 심각한 범죄 행동을 하다가 발각되면 공개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탈북자의 증언을 전했다.
그루빠가 가장 많이 단속하는 것은 한국의 음악, TV, 영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메모리카드와 휴대전화 보급으로 한국의 문화를 몰래 들여와 공유하는 것이 쉬워졌다.
그러나 이렇게 외국 문화를 엄격히 통제하는 북한이 디즈니를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에는 아동 병원의 복도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림으로 꾸민 장면이 북한 국영 방송에 나왔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공연에는 '미키마우스, '위니 더 푸' 캐릭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나왔다. 당시 미국은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며 북한에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작년에는 네덜란드 미피 캐릭터를 이용한 어린이 그림책이 발간됐고, 2016년에는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시장 가판대에 '니모를 찾아서, '미녀와 야수' 등 DVD가 판매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NK뉴스는 북한에 등장한 외국 미디어들이 이념적으로 덜 위험한 어린이 콘텐츠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더 타임스는 김정은 위원장이 스위스 국제학교에 다니던 시절 독일 밴드 '모던 토킹'의 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대사관 숙소에 초대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기도 하는 등 해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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