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혐의 세부내용 공개…'파산' 실버게이트·시그니처 이용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고객자금 유용 등의 혐의로 제소된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미국 은행 2곳을 이용해 수십억 달러를 전 세계로 옮겨 놓았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밝혔다.
앞서 SEC는 지난 5일 법인 바이낸스와 최고경영자(CEO) 자오창펑을 투자자 자금 사취와 각종 자금의 부적절한 혼합, 미등록 브로커 등 혐의로 워싱턴DC 연방 법원에 제소했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SEC는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은행 2곳을 거쳐 이뤄진 거대 가상화폐 거래소 관련 회사 간 복잡한 거래를 설명했다.
또 때로는 수일 만에 엄청난 양의 현금이 계좌에 입출금되는 방식을 자세히 풀어놓았다.
바이낸스가 막대한 현금을 해외로 옮겨놓는 데 이용한 은행은 미국 가상화폐 거래 은행 실버게이트와 지역은행 시그니처다. 두 곳 모두 지난 3월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로 파산했다.
창업자 자오 CEO를 포함한 바이낸스 측 관계자들은 이들 지역 은행을 통해 수억 달러, 어떤 경우에는 수십억 달러를 카자흐스탄과 리투아니아, 인도양 섬나라 세이셸 지역의 회사들과 관련된 계좌로 옮겼다.
바이낸스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거의 2억2천500만 달러(약 3천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됐는데, 그 기간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 혹은 얼마나 냈어야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SEC는 제소에 이어 지난 6일 밤 법원에 미국 내 바이낸스 자산의 긴급 동결을 요청했으며, 자오 CEO가 자신이 관리하는 역외 법인으로 수십억 달러를 옮기는 계획의 설계자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바이낸스 대변인은 SEC 서류에 제시된 거래들에서는 고객의 돈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국제적인 자금 이체는 정상적인 사업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들은 잘못이 없으며 법정에서 끝까지 다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NYT는 이런 내용의 SEC 문서가 바이낸스 경영진이 왜 자금을 이렇게 이체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돈세탁 전문가들은 이처럼 규모가 크고 신속한 이체에 관해 은행으로서는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한 예로 2022년 2월에 수일 만에 2천만 달러(260억원)가 바이낸스의 실버게이트 계좌에 입금됐고 대부분인 1천990만 달러가 인출되면서 잔액이 월초 760만 달러(100억 원)에서 월말 770만달러였다는 것이다.
또 시그니처의 바이낸스 계좌에서는 모두 같은 달에 10억 달러의 예금과 13억 달러의 인출이 있었고, 빠져나간 돈은 자오 CEO가 관리하는 회사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기반을 둔 메리트 피크(Merit Peak)로 갔다. 이에 대해 SEC는 비밀리에 고객 자금이 회사 자금과 뒤섞여 맘대로 쓰인 것으로 의심한다.
돈세탁 문제 전문가인 조지 메이슨 대학의 루이스 셸리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규모가 큰 금융 부정행위 중 하나"라고 NYT에 말했다.
그는 두 은행이 그토록 오랜 기간 바이낸스를 위해 해외로 수십억 달러를 옮긴 데 깜짝 놀랐고 문제를 제기했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규제당국은 실버게이트나 시그니처 은행 측이 바이낸스 계좌의 이런 움직임을 신고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두 은행 모두 가상통화에 투자한 고객이 언제든 전 세계에서 미국 달러로 자금을 신속하게 이체할 수 있도록 했고, 이는 많은 미국 은행이 하지 않은 틈새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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