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하원 적극 지지받는 바이든 행정부, 본격행동 나설듯
中 "선진국 감투 거부"…우호적 개도국 연대로 편 가르기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에서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자 중국이 반발, 미중 갈등의 전선이 한층 확장하고 있다.
12일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하원에서 미 국무부 장관이 중국의 개도국 지위 변경을 추진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데 이어 지난 8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조치에 미 상·하원이 적극적으로 가세한 모습이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이 여전히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비(非)개도국에 부과되는 엄격한 기준과 의무를 회피하는 건 "터무니없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개도국"이라며, 미국 등의 개도국 지위 박탈 시도는 서방 패권주의를 드러내는 것이자 중국을 봉쇄하려는 것이라고 맞선다.
◇ 칼 빼든 미국, 법안 상원 통과 후 WTO 공략할 듯
미 상원도 해당 법안을 정식으로 통과시키면 미 행정부는 WTO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으로 서방으로부터 외면받아 최대 위기에 처했던 중국은 2001년 미국 주도로 WTO에 가입한 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에 의해 도로 쫓겨날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2021년 11월 중국은 WTO 가입 20년의 성과에 대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816.4% 증가하고, 1인당 GDP는 8천717위안(약 162만원)에서 7만2천 위안(약 1천335만원)으로 늘어났으며, 세계 최대의 중간 소득(middle income) 인구를 갖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중국을 보는 외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월 26일 '중국의 WTO 준수에 관한 2022년 의회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가입 당시 자발적으로 WTO의 시장주의적인 접근법을 수용하고 중국의 무역 시스템과 제도에 도입하는 데 동의했지만, 실제 준수 실적은 크게 미달한다"고 평가했다.
USTR은 WTO 가입 20여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중국은 국가 주도·비시장적 경제 관행을 강화했으며, 그로 인해 미국 등 여타 WTO 회원국의 노동자와 기업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은 개도국임을 주장하며 자국 무역 체제 자유화 요구를 거부하는 동시에 회원국 시장에 대한 개방적이고 비차별적인 접근이라는 수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게 USTR의 판단이다.
이런 인식에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미 상·하원 모두 공감하고 있다.
사실 중국의 개도국 지위는 오래전부터 의심받아왔다.
앞서 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은 2021년 12월 중국을 개도국으로 인정해 부여하던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폐지했다. 2014년 스위스, 2019년 일본에 이은 조치였다.
일반특혜관세제도는 선진국이 개도국의 수출품과 반(半)제품에 부여한 보편적이고 비차별적이며, 비호혜적인 관세 우대제도다. 1978년 제도 도입 이후 40개국이 중국에 GSP 혜택을 부여했으나, 이젠 몇 개국밖에 남지 않았다.
GSP 혜택 중단은 중국의 개도국 주장을 더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 中 "우리는 여전히 개도국" vs 美 "이젠 아냐"
WTO 규정을 보면 회원국들은 스스로 개도국 여부를 결정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WTO 협정 등의 개도국 우대조항이 150여개에 이른다는 점에서 개도국 탈출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2019년 7월 중국,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멕시코,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브루나이 등과 한국을 지목해 WTO 개도국 지위 박탈을 요구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세계은행 분류상 고소득 국가, 세계 전체 교역량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의 기준에 포함되면 개도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한국은 2019년 10월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대만, 싱가포르, UAE, 브라질 등도 가세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버텼다.
중국의 개도국 지위 박탈 문제가 어제오늘의 논란거리는 아니지만, 최근 다시 이슈로 부상한 데는 중국이 국제사회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해온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대만 침공을 염두에 둔 대규모 군사훈련을 반복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장기전을 이어가는 러시아를 두둔함으로써 미국의 WTO 개도국 박탈 압력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이전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춘 채 조용히 실력을 키움)의 틀을 벗고 '대국굴기' 기조로 대내적으로는 통제 강화, 대외적으로는 팽창을 거듭해왔다.
특히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공격적인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가 두드러졌다.
이런 중국에 대해 미국은 트럼프 전 행정부 때부터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해왔고,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안보 이슈를 연계해 대중국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중국이 경제 대국이라는 힘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들에 '경제적 강압'을 가하는 데 주목한다.
미국은 지난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려 했으나, 프랑스·독일 등의 반대로 중국을 명시한 대책 마련에는 실패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줄곧 대만과 남중국해 이슈를 바탕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해왔다.
또 첨단 반도체·핵심 광물 등과 관련해 중국을 뺀 공급망 재편을 추진 중이다. 미국의 중국 개도국 지위 박탈 시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 中 "'선진국 감투' 거부"…개도국들과 연대 대응 나설 듯
시 주석은 미 의회의 중국 개도국 지위 박탈 추진 법안에 불쾌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시 주석은 지난 9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과 남아공은 모두 중요한 개발도상의 대국"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남아공 관계는 광대한 개도국의 공동 이익을 보호하고 중국과 아프리카의 단결·협력을 주도하는 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과 남아공 양국이 함께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광대한 개발도상국의 공동 이익을 수호하는데 협력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외교부의 왕원빈 대변인도 같은 날 "미국이 중국에 선진국이라는 모자를 강요하는 것은 중국의 발전 성과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기 위해 개도국 지위를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 대변인은 아울러 "개도국으로서 중국이 누리는 합법적 권리는 미국 의회가 입을 놀린다고 취소되는 게 아니다"라는 거친 표현도 사용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개도국 지위는 미국이나 일부 서방 언론이 정하는 것이 아니며 개도국 지위 포기 요구는 말 그대로 서방 패권주의이자 중국을 봉쇄하려는 시도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앞서 작년 12월 중국의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77개 개도국 모임(G77)·중국 장관급 회담의 서면 축사에서 공동 운명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왕 정치국원은 "G77과 중국은 개도국의 가장 중요한 다자간 협력 플랫폼"이라며 "우리는 협력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광범위한 개도국과 세계 각국의 공동 이익을 수호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중국은 자국에 우호적인 개도국들에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연대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등 서방과 편 가르기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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