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수사라 의심받을까 경계하며 15개월 '미적'
윗선 연결고리 찾다 시간 낭비하고 특검에 수사 인계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연방 의회 난입 사태를 배후에서 선동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미연방수사국(FBI)이 관련 수사를 1년 넘게 미적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법원 재판기록 및 의회 문서에 대한 조사를 비롯해 전현직 검사 및 수사관 등 익명을 요구한 수사 관계자 2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FBI가 2022년 4월까지 폭동 사건 후 약 15개월간 선동 의혹 관련 수사를 개시하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1·6 미 의사당 폭동 사건은 2021년 1월 6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불복, 그 선거결과를 인증하는 회의가 열린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폭동 사건 발생 직후 수사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연루 의혹과 관련해 FBI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의사당 폭동 사건과 관련해 FBI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방수사국(FBI)은 워싱턴DC 연방 검찰의 마이클 셔윈 검사장 대행의 수사 지휘 아래 주도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여왔다.
문제는 의사당에 난입한 용의자들을 상대로 아래로부터 수사를 벌여 배후 윗선을 찾아내는 '상향식' 방법을 고수했다는 점에 있었다.
셔윈 검사장 대행은 2021년 3월 바이든 행정부에서 초대 법무 수장을 맡은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에게 사건 발생 후 두 달간 FBI 요원들이 278명의 폭도를 기소하고 885명의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갈런드 장관은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법무장관 임명 시 의회 난입 사태 수사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이 보고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이나 그의 측근의 연루 가능성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고 WP는 전했다.
WP는 "정치적 수사로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심, 보수적인 관행, 트럼프 측근 조사 개시에 충분한 증거 여부를 둘러싼 충돌 등이 느린 수사 속도에 기여했다"라고 평가했다.
수사 초기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을 향한 수사로 직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무부 내부에서도 제기되기도 했다.
J.P. 쿠니 검사가 이끄는 수사팀은 기존 수사팀의 상향식 수사 방식에 의문을 표하며 트럼프 최측근 인사들을 곧바로 정조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관련 수사에 착수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갈런드 장관과 리사 모나코 법무부 차관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루 의혹과 관련해 상향식 수사 방식을 채택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1년의 세월을 지체하는 동안 상향식 접근 방식으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물론 그의 측근의 폭동 연루설을 연결할 만한 증거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법무부 내부에서 확산했다.
익명의 한 소식통은 WP에 "상향식 접근법이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게 분명해졌다"며 "어느 지점에선가 더 위로 올라갈 사다리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 하원 의회난입조사특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회 폭동을 전후로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시도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며, 그에 대한 기소를 법무부에 권고하는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결국 갈런드 장관은 2022년 11월 잭 스미스 특검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밀 유출 의혹 사건 수사를 맡기면서 의회 폭동 연루 의혹 사건에 관한 수사도 함께 맡기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스미스 특검은 이후 관련해 트럼프 전 행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소환 조사를 벌이는 등 수사를 진행했다.
대배심은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을 증인으로 불러 1·6 폭동 사태와 관련해 증언을 듣기도 했다.
스미스 특검은 이달 초 불법 기밀 반출 등 혐의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데 이어 의회 폭동 연루 의혹과 관련해서 꾸준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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