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숨은영웅] '93세 노병' 美 前의원 랭걸 "참전이 내 삶 구했다"

입력 2023-06-25 06:25  

[한국전 숨은영웅] '93세 노병' 美 前의원 랭걸 "참전이 내 삶 구했다"
"전우 잃어 슬프지만 민주주의 구한 것 행복…민주주의 통일한국 보고싶다"
"이 나라와 인연 이어질 줄 몰랐다"…尹 美의회 합동연설 호명에 "매우 영광"
"중공군 대학살, 中 용서못해…북핵 해결 위해 中과 협상해 대북지원 중단해야"

[※ 편집자 주 = 올해는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6·25 전쟁 정전협정이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한국전 당시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 22개국 196만명의 젊은이들이 유엔의 깃발아래 참전해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이들이 피흘려 싸우며 지켜낸 동맹의 가치와 정신이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룬 토양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연합뉴스는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특파원들이 각국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생생한 전투 기억과 소회를 들어보고 발전한 한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획 리포트를 연재합니다.]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내겐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은 소원이 있다면 오직 민주주의로 통일된 한국을 보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잘 알려진 찰스 랭걸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은 24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쉬움이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46년간 연방의회에서 활약했던 노정객이 '통일 한국'을 마지막 소원 중 하나로 꼽은 것은 이름조차 몰랐던 낯선 땅 한국이 인생의 경로를 완전히 바꾼 전환점이 됐기 때문이다.
뉴욕시 할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교를 중퇴하고 1948년 미 육군에 입대한 그는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돌아온 덕분에 정부 지원을 받아 학업을 마치고 법조인을 거쳐 정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6·25 발발 후 파병 지시를 받고 부산행(行) 배에 올랐던 그는 "처음 명령을 받았을 때는 전면전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인들 사이의 분쟁에 관한 치안 유지 임무라고 들었다. 무엇에 관한 전쟁인지 몰랐다"라고 술회했다.
그가 소속된 제2보병사단 503야전포병대대는 1950년 8월 부산 땅을 밟았고, 인천상륙작전 후에는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북진했다.

압록강 근처까지 밀고 올라갔을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 전에 귀국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부대 전체에 감돌았지만, 중공군의 참전이 이러한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갔다고 한다.
랭걸 전 의원은 "북한-중국 국경 근처까지 올라갔고, 우리는 곧 집에 돌아갈 예정이었다"며 "그때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왔다. 그건 대학살이었다"라고 몸서리쳤다.
압록강의 중국식 영어명인 'Yalu River'를 두 번이나 되뇐 랭걸 전 의원은 "끔찍한 악몽이었고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고 술회했다.
그해 11월30일 평안남도 군우리 전투에서 중공군 포탄에 맞아 생사의 기로에 섰지만, 전우 40여 명을 이끌고 필사의 탈출에 성공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퍼플하트 훈장과 동성 무공훈장은 이러한 공을 인정한 것이었다.
전역 후 정부 지원으로 고교와 대학, 로스쿨 과정을 마친 그에게 한국전 참전은 "내 인생을 바꿨고 내 삶을 구했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한국을 떠날 때는 "앞으로 이 나라와의 인연이 이어질 줄 몰랐다"던 랭걸 전 의원이 뉴욕주 하원의원을 거쳐 1971년 연방의회에 입성한 뒤 대표적인 친한파 정치인으로 한국과 다시 가까워진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의원들 중 나보다 더 한국과 가까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한반도 관련 의정활동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난 2003년 친한파 의원모임 '코리아 코커스' 창설을 주도하고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재미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 6·25전쟁 추모의 벽 건립 법안에 적극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랭걸 전 의원은 "한국 정부의 사람들과 매우 매우 가까워졌고 민주주의를 향한 그들의 노력을 지지했다. 한국의 여성 대통령과도 매우 친해졌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국빈 방미 당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다며 "매우 영광이었고 기분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11일 93번째 생일을 보낸 랭걸 전 의원은 "아주 아주 건강하다"고 근황을 전했지만, 먼저 떠나보낸 전우들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그는 "지지난주에도 2사단 동료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며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거의 모든 동료와 친구들을 고령 탓에 잃었다"고 말했다.
노병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자신이 구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성취다.
랭걸 전 의원은 "너무 많은 전우를 잃어 슬프지만 민주주의를 구한 것은 행복한 일"이라면서 '한강의 기적'을 예상할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아무도, 심지어 한국인들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70여년 전 자신을 공격했던 중공군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다(No)"는 답이 두 번이나 돌아왔다.
그는 "당시 중국의 공격은 미국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세계적인 강대국(world power)이 됐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용서는 없고 단지 협상이 있을 뿐"이라면서 "우리(미중) 모두 대국이기 때문에 안보와 무역에 관해 협상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북핵 문제 해법에 관한 조언을 구하자 "참전용사가 아닌 외교관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라면서도 "유일한 희망은 중국과 협상해 대북 지원을 중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와 협력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firstcircl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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