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순방 中리창, 獨·佛서 매력 공세에도…"성과는 글쎄"

입력 2023-06-23 16:45  

첫 해외순방 中리창, 獨·佛서 매력 공세에도…"성과는 글쎄"
중국, 디리스킹·대만문제 놓고 EU 미국에서 떼어내기 주력
EU, 中에 우크라이나전 태도 변화 요구·인권 탄압 개선 요구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의 리창 총리가 미국의 압박에 맞서 첫 해외 순방지로 독일과 프랑스를 골라 방문해 연일 우호 메시지를 내놓고 매력 공세를 폈으나, 성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아 보인다.

우선 '시진핑 1인 체제'에서 리 총리의 위상이 이전과는 달리 '힘 빠진 2인자'이기는 하지만, 공산당 최고 7인 중 1명인 상무위원이 취임 후 첫 방문국을 신중히 고른다는 점에서 현재의 중국이 독일과 프랑스를 얼마나 중시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시기적으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18∼19일 방중 기간에 맞춘 18일부터 리 총리의 독일·프랑스행은 함의가 작지 않다.
친강 외교부장과 왕이 당 중앙정치국 위원에 이어 시진핑 국가 주석까지 블링컨 장관을 만나 미국의 압박 정책에 대한 중국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리 총리는 독일·프랑스에서 대미 견제 활동을 벌였다.
리 총리는 유럽연합(EU)의 주도국이면서 미국의 대외 정책과 결을 다소 달리하는 독일과 프랑스를 설득해 우군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 유럽 다가서기 강화하는 中…美 압박 우회로 확보 차원
그간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대(對)중국 압박의 강도를 높일수록 중국은 유럽을 우회로로 여겨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과의 엇박자를 불사하면서 독자 행보를 해왔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미국과 거리두기를 하는 정세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중국 경제·안보 압박, 대만 군사 지원 확대 등과 관련해 유럽의 이견을 일정 수준 끌어내는 성과도 거뒀다.
지난 4월 5∼7일 중국을 방문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귀국길 인터뷰에서 "우리(유럽)가 대만 문제에 속도를 내는 데 이익이 있느냐. 아니다"라고 자문자답함으로써 대만과 거리두기 발언을 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내친김에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중국을 겨냥한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에 대해 유럽이 "미국의 졸개가 돼선 안 된다"는 강성 발언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런 '지원 사격'은 중국에 큰 도움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미국이 5월 19∼21일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응해야 한다며 G7의 대중국 디커플링을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을 사실상 차단했다.
G7 정상회의에 앞선 지난달 초 중국의 한정 국가부주석과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장은 독일·프랑스·네덜란드·오스트리아·노르웨이 등을 각각 찾아 외교 총공세를 폈다.
중국이 EU의 최대 교역국임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에 동참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때문인지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대중국 경제적 억압에 대한 대응책은 합의되지 않았고, 미국의 디커플링 주장도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수위가 낮춰졌다.
디커플링이 '대국 굴기'로 다른 나라에 경제적 강압을 하는 중국을 배제하고 공급망을 재편하자는 것이라면, 디리스킹은 중국발(發) 위험 요인 제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리 총리의 이번 독일·프랑스행(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대만 문제 개입 불가·反디리스킹 외친 中…녹록지 않은 유럽
사실 EU는 중국을 큰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이자 패권 도전국으로 여긴다면, EU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대해 유화적이다. 미국은 EU와 연대해 중국을 압박할 고삐를 죄고 싶어 한다면, 중국은 EU를 우회로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 총리는 '경제 외교' 깃발을 들고 독일과 프랑스를 찾아 반(反)디리스킹에 주력했다.
리 총리는 20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중국 경제포럼에서 "디리스킹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국가를 억제하거나 배제하는 차별적 조처를 관철한다면, 이는 시장의 원리와 공정경쟁,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외쳤다.
바이든 미 행정부가 대중국 디리스킹의 초점을 중국의 군사력 강화 등으로 연결되는 첨단 반도체·핵심 광물의 공급망 재편에 맞춘 것을 겨냥한 반격이었다.
그러나 애초 대중국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주창한 건 EU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이런 공격은 실효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실제 독일도 지난 15일 사상 처음으로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면서 중국과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을 원한다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20일 리 총리와의 회담에서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여기에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보탰다.
그는 "중국이 계속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압박했다.
또 중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더 강력히 행사해야 한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은 아주 특별한 임무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EU는 작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국이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숄츠 총리는 22일 독일 연방하원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동·남중국해에서 위력을 활용하거나 강제를 통해 현재 상태(status quo)를 바꾸려는 일방적인 시도는 단호히 거부한다. 이는 특히 대만의 경우에 해당한다"며 중국의 대만·남중국해 정책을 비판했다.
프랑스의 경우 마크롱 대통령이 친중 성향을 드러내고는 있으나, 정부 차원의 첨단 반도체, 대만·남중국해 문제, 우크라이나전 등과 관련한 입장은 EU와 크게 다르지 않다.
EU로선 중국의 열악한 인권 문제도 쉽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그동안 EU는 중국에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홍콩 민주화 시위 진압 등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상황 개선을 집요하게 요구해왔으며, 이와 관련한 진전이 없다면 관계 개선이 쉽지 않다는 입장도 전달해왔다.

◇ 중국의 EU 우군화는 '시기상조'…기후변화 공조가 돌파구?
이처럼 중국이 미국과 일정 수준으로 거리두기를 하려는 EU에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펴고 있으나, 우군으로 만들기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많다.
현재로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견해차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 "미중 간에 전략적 경쟁 속에서 러시아는 중국에 어떤 국가와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상대"라면서 "중국이 유럽의 '호의'를 얻기 위해 러시아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짚었다.
여기에 중국 당국이 EU의 신장위구르·홍콩 인권 개선 요구에 냉담한 점도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다.

EU의 자세가 대만·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미국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도발적인 대만해협 군사 훈련과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수용하는 것 또한 아니라는 점도 양측 간 접점 찾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특히 첨단 반도체와 리튬·희토류 등 핵심 광물에 대한 대중국 디리스킹은 EU 역시 추구하는 바여서 중국으로선 난처할 수밖에 없다.
EU는 지난 4월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EU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반도체법 시행에 합의하고 2030년까지 민간과 공공에서 EU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EU가 큰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기후변화 대처 노력에 중국 역시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이와 관련한 공조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시진핑 주석은 202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2030년에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에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이른바 '쌍탄'(雙炭) 목표를 제시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이 화력 발전과 석탄 연료 사용을 줄인 바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은 2021년 11월 유엔 기후 정상회의인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불참했으며, 당초 약속과는 달리 석탄 화력발전소도 활발히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ji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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