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무트 등에서 처절하게 싸우고도 '부당 대우' 받자 불만 누적
"쇼이구가 바그너 그룹 로켓 공격 명령" 주장 후 러시아로 진격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반란을 감행한 배경을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바그너그룹과 정규군 사이에 쌓인 오랜 갈등에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특히 정규군을 이끄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권력 다툼에서 점차 패색이 짙어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불리던 프리고진이 결국 반기를 들고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게 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프리고진이 바그너그룹 용병들을 이끌고 러시아 본토에 진격하는 상황을 두고 정규군과 바그너그룹 사이의 공공연한 갈등을 배경으로 짚었다.
바그너그룹은 작년 말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인 바흐무트를 사수하기 위해 후퇴 없는 싸움을 벌이며 존재감을 끊임없이 알렸다.
프리고진은 장기 소모전 양상으로 흐르는 바흐무트 전투에서 자리를 지키며 정규군의 전술 운용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종종 내기도 했다.
특히 올해 1월 정규군 지휘권자 인사를 두고 자신이 지지하던 세르게이 수로비킨 우크라이나전 통합사령관이 지휘권을 상실하자 쇼이구 장관과 프리고진 사이의 파워게임이 표면화했다는 분석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왔다.
실제로 프리고진은 노골적으로 쇼이구 장관과 러시아 정규군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전선에 투입된 바그너그룹에 대한 탄약 보급 등을 러시아 국방부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공개적으로 "우리를 와해하려는 시도가 있다", "바그너 전사들이 파리처럼 죽어간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러시아 국방부를 질책한 것은 쇼이구 장관의 지휘권을 깎아내리며 파워게임을 벌이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을 낳았다.
이때만 해도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는 프리고진의 도발적 발언에도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시기가 임박한 가운데 끊임없이 프리고진이 정규군의 보급 문제를 비난하면서 적전분열 양상을 연출하자 러시아 정부는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을 엄격히 통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바그너그룹은 지난달 초 바흐무트에서 부대를 철수하고 정규군에 임무를 넘겼지만, 갈등을 노출하는 일은 끊이지 않았고 오히려 강도가 세졌다.
특히 바그너그룹은 지난 4일 텔레그램 채널에 한 러시아 군인을 신문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파문을 더욱 키웠다.
영상 속 장교는 자신을 제72기동소총여단 소속 '로만 베네피틴' 중령이라고 밝히면서 "바그너에 대한 개인적 적대감 때문에 술에 취해 바그너 차량에 발포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측 전투병력끼리 벌어진 분열과 혼란상을 고스란히 내보인 셈이다.
쇼이구 장관은 지난달 모든 러시아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할 것을 지시했다. 사실상 바그너그룹에 대한 통제권을 국방부가 가져오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에 프리고진은 지난 11일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하면서 정규군과의 관계 단절을 공식화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이 본격화한 시기에 바그너그룹과 정규군 사이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커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고진은 23일 쇼이구 장관이 바그너그룹에 대한 로켓 공격을 명령했다는 영상을 게시하고 쇼이구 장관에 대해 "이 인간쓰레기는 끝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 보안당국은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 조짐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범죄 수사를 개시했고,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하면서 무장 반란은 현실화했다.
영국 국방부 정보당국은 이런 갈등 상황에서 발생한 무장반란이 "러시아가 최근 맞이한 가장 중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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