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국방장관 교체는 쉽지 않을 듯…"해임시 프리고진 손들어주는 셈" 지적도
이미 신망 잃어 계속 신임하기도 난처…크렘린궁 "쇼이구 거취 협상 안했을 것"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발발 하루 만인 25일(현지시간) 종료 수순으로 접어들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사태를 어떻게 정리하고 넘어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반역에 단호히 대처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엄포가 무색할 정도로,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용병들을 이끌고 모스크바 200㎞ 부근까지 거침없이 진격했고 러시아는 협상 끝에 그를 처벌하지 않는 조건을 붙여 진격을 멈췄다.
이 과정에서 무장반란 통제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러시아의 수도 인근까지 진격을 허용한 세르게이 쇼이구(68) 러시아 국방장관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어떤 처분을 내릴지는 아주 예민한 문제다.
쇼이구 장관은 반란을 이끈 프리고진이 수시로 비난의 목소리를 냈던 대상이다. 이번 반란이 사실상 바그너 그룹을 정규군의 통제권 안에 묶어두려는 쇼이구 장관에 강하게 반발하며 그를 축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많다.
러시아 정규군이 국가 안보 위기 사태에 해당하는 이번 반란에 대응하는 과정은 곳곳에서 허술한 대처라는 논란을 불렀다.
바그너 그룹이 1천㎞ 가까운 거리를 돌파할 동안 러시아 정규군과 간헐적인 교전을 벌이면서도 비교적 순조롭게 북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과연 반란군을 제압할 계획이 제대로 세워졌는지부터 의문시하는 시각이 많다.
모스크바가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하고 각종 보안 조처를 강화했다지만 전날 오후가 돼서야 서남부 외곽에 기관총 포대를 설치하는 등 경계가 뒤늦게 강화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 같은 소홀한 대처를 사유로 푸틴 대통령이 쇼이구 장관을 곧장 문책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총지휘권자를 물러나게 한다면 혼란만 가중할 가능성을 푸틴 대통령으로선 고려해야 한다.
쇼이구 장관의 거취에 변경이 생기면 '파워게임'에서 패색이 짙었던 인물이자 반란 주도자인 프리고진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푸틴 대통령으로선 난감하다.
정규군에 대한 비난 발언을 쏟아내며 러시아 군부 내에 내홍을 부추겼던 프리고진을 지난달 바흐무트 전선에서 철수하게 할 때까지만 해도 프리고진은 쇼이구 장관과의 정치력 싸움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이번 반란에 대한 엄중한 대처를 공언한 푸틴 대통령이 협상 끝에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 데 이어 쇼이구 장관까지 문책한다면 반란 세력의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반면, 이번 반란이 거침없이 전개된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진 상황에서 쇼이구 장관은 이미 군(軍)내에 신망을 상당 부분 잃었을 것으로 보여 푸틴 대통령으로선 이를 타개할 방법도 고민해야 하는 실정이다.
쇼이구 장관은 직업 군인 출신이 아닌 이력을 갖고 있다. 옛소련 시절 연방 공산당 아바칸시 위원회 제2서기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위원회 감찰관 등을 지냈고 1991년 러시아 연방공화국 국가비상사태 의장에 오른 정치인이다.
옛소련 해체 후 러시아 연방의 국가 위기관리 분야에서 능력을 보였고, 1999년 러시아 보수주의 정당인 통합러시아당을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창당했다. 이후 모스크바 주지사를 거쳐 2012년 11월부터 러시아 국방장관을 10년 넘게 맡아왔다.
푸틴 대통령이 거느린 대표적 충성파 인사이자 '이너서클' 핵심 인물 가운데 쇼이구 장관이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푸틴 대통령이 애호하는 래브라도레트리버 검둥개를 쇼이구 장관이 선물했고,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에서 웃통을 벗고 말을 타는 모습을 담아 유명해진 사진 역시 쇼이구 장관과 동반 여행 때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쇼이구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동향은 아직 뚜렷하게 감지되지 않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쇼이구 장관의 거취와 관련해 "그 문제는 러시아 연방 헌법에 따른 푸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프리고진과 러시아 정부 사이의 접촉 과정에서 쇼이구 장관에 관한 주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를 향한 파죽지세의 진군을 갑자기 멈춘 것을 두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이뤄진 협상에서 그의 핵심 요구 사항이었던 쇼이구 장관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거론됐을 것이라는 추측은 끊이지 않고 있다.
쇼이구 장관이 내전 직전까지 갔던 중대 국면을 맞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이 없다는 점도 이런 추측의 근거로 제시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쇼이구 장관이 이미 해임됐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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