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기대주' 탈바꿈한 그리스…경제성장률 2021년 8.4%, 2022년 5.9%
도청 스캔들·열차 참사 등 잇단 악재도 경제성과로 극복
'국제채권단 긴축요구 거부' 공약 부도냈던 '포퓰리즘' 야당 참패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5일(현지시간) 실시된 그리스 총선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성향의 여당인 신민주주의당(ND·이하 신민당)이 승리한 원동력은 단연 '경제'다.
그리스 정치 명문가 출신인 미초타키스 총리는 2019년 취임 이후 경제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기업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시장친화적인 경제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리스 경제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세계 경기침체와 관광 부문의 타격으로 마이너스(-) 9%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이후 강력하게 반등했다. 그리스의 경제 성장률은 2021년 8.4%, 지난해 5.9%로 2년 연속 유럽연합(EU) 평균(5.4%, 3.5%)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지난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의 파고가 덮친 때였다. 그리스는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다.
수출 호조가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한 비중은 2019년 19%에서 지난해에는 49%로 증가했다.
그와 동시에 정권 초기인 2020년 206%까지 치솟았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작년 171%로 떨어졌다.
정부 부채 비율은 향후 3년 동안 매년 10%포인트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의 부채 비율은 현재 이탈리아(144%)보다 낮아지게 된다.
외국인 직접 투자는 지난해 50% 증가해 2002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2015년 27.5%에 달했던 그리스의 실업률은 지난해 12.2%로 뚝 떨어졌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 성적표를 내놓은 국가로 그리스를 꼽았다. 2010년 재정위기로 국가부도 사태에 몰려 구제금융을 받았던 국가가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성장세로 접어든 그리스는 지난해 3월 구제금융을 졸업했고, 국가 신용등급도 투자적격(BBB-)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처럼 미초타키스 정권은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성과를 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해에는 이른바 '그리스판 워터게이트'로 불린 도청 사건이 터졌다. 국가정보국이 야당 의원과 언론인, 기업인 등을 사찰했다는 의혹이었다. 그 배후로 지목된 미초타키스 총리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올해 2월에는 그리스 역대 최악의 열차 정면충돌 참사가 발생했다. 57명에 이른 사망자 대부분이 20대 대학생이었다. 노후한 철도 시스템을 방치해 참사를 초래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그리스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지난 14일에는 그리스 앞바다에서 난민선이 침몰해 6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반이민 정책을 앞세운 우파 정권이 난민을 의도적으로 방치해 최악의 인명 사고를 초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런데도 그리스 유권자들은 여당에 표를 몰아줬다. 현 정권에 반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조차 그리스 경제의 성장과 안정을 이뤄낸 미초타키스 총리의 공로를 인정한 셈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리스 국민들의 성향이 보수적으로 변해 도청 스캔들, 열차 충돌 사고, 난민선 참사 등의 도덕적·사회적 이슈에 둔감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야니스 치르바스 아테네대 정치학과 교수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변했고, 안전과 보호와 같은 가치를 더욱 중시하게 됐다"며 "이는 보수적인 가치"라고 말했다.
그리스 여론조사업체 라스의 정치 분석가인 마리아 카라클리우미는 "유권자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더 이익이 될 것인지를 따진다"며 "유권자들은 결국 경제적 안정을 선택했다. 미초타키스 정권에서 경제는 안정됐다"고 말했다.
총선이 집권 여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최대 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이끄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는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2019년 총선을 포함해 미초타키스 총리와의 격돌한 선거에서 5전 전패를 당했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2015년 1월 국제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거부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역대 최연소 그리스 총리로 취임했지만, 반년 만에 공약을 뒤집고 채권단의 더 강화된 긴축안을 수용해 국민의 반발을 샀다.
새 긴축안의 조건은 가혹했다. 치프라스 정권은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 아니라 세금 인상과 연금·임금 삭감 등 혹독한 긴축 정책 때문에 무너졌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그리스가 임금은 불가리아 수준인 데 반해 물가는 영국 수준"이라며 서민들의 생활고를 강조하는 선거 전략을 활용했다.
그러나 미초타키스 총리가 총선 직전인 지난달을 포함해 2019년 취임 이후 3차례에 걸쳐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지난해 6월 12.1%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이 지난달에는 4.1%로 뚝 떨어지면서 이 전략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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