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첨단기술 차단 디리스킹 속 '고육책'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반도체·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배제하고 중국 자체적인 반도체 설계·생산 기술을 활용해 5G 스마트폰을 생산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스마트폰 리서치 기업 3곳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화웨이는 이런 계획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고심한 끝에 이 같은 '자력갱생'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것은 2019년 5월부터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해 인민해방군과 연계돼 미국 안보를 해칠 수 있다면서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5G용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또 네덜란드 정부에 요청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차단했다.
이 때문에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미국 애플, 한국 삼성전자와 자웅을 겨루던 화웨이는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었다.
5G용 반도체를 제조하거나 공급받을 수 없게 된 데다가 미국 제재로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체제(OS)에도 접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화웨이는 2020년 2분기 5천580만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해 세계 출하량 1위에 올랐으나, 미국의 제재로 같은 해 4분기 출하량은 세계 6위인 3천300만대로 급감했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이후로도 더 떨어져 지금은 '순위 밖'이다.
로이터는 화웨이의 스마트폰 등 개인 소비자 대상 매출이 2020년 4천830억 위안(약 86조2천억원)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1년 후에는 거의 50% 급감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는 '애국 마케팅'으로 중국 시장에선 그나마 버티고 있다. 2020년 11월 화웨이에서 분사한 아너는 작년 4분기 기준으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추이를 보면 화웨이의 이런 내수 전략도 고비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압박을 키우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5G에 이어 4G 기술의 중국 수출도 차단할 경우 상황은 더 어렵게 된다.
바로 이런 상황이 화웨이가 자력갱생 전략을 택하게 되는 배경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화웨이는 이전보다 발전한 자체 반도체 설계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의 반도체 제조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미국의 제재에서 원천적으로 벗어나는 구조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반도체 수율(정상적인 제품의 비율)이다. 로이터는 화웨이의 5G용 칩 예상 수율이 50% 미만일 경우 출하량은 200만∼400만개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화웨이가 2019년 2억4천60만대의 스마트폰을 생산했던 점을 상기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화웨이가 현재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EUV 장비를 네덜란드 ASML로부터 도입할 수 없는 점도 자력갱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화웨이는 여전히 ASML로부터 살 수 있는 이전 세대 장비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로 7나노 칩을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 노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2기 때인 2018년에 첨단제조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계기로 집중적인 지원을 받은 거대 통신장비 기업이다.
첨단 반도체 자급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중국은 2014년 60조원대 반도체 산업 투자 펀드인 '대기금'(공식 명칭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을 설립하고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도 세웠었다.
이때 화웨이 이외에 SMIC, 칭화유니 계열의 반도체 설계업체 UNISOC(쯔광잔루이<紫光展銳>)도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이런 전략에 맞서 상당수 중국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한편 화웨이를 겨냥한 공격도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미국은 한국·일본·대만과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를 통한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미국은 첨단 무기 등의 제조로 이어질 수 있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는 물론 기술 습득을 싹부터 자르겠다는 심산으로 디리스킹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kji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