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 용적률 위반으로 서울시와 갈등…시 "신통기획 훼손 안돼" 강경 대응
조합 "300%로 하면 전용면적 줄어, 공공보행로 단지 관통도 문제" 불만
매수 문의 급증…토지거래허가제에도 역대 최고 거래가 경신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강남 재건축 최대어 '압구정 3구역' 설계사 선정을 둘러싼 조합과 서울시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설계업체가 제시한 용적률을 문제 삼아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설계업체를 경찰에 고발하고 조합에 설계 재공모를 요구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조합은 설계사 선정 총회를 강행하고 문제 업체를 설계사로 선정하며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대 '부자 아파트' 재건축 사업으로 기록될 압구정 3구역 재건축 사업이 첫 단계부터 삐걱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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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 재건축의 핵심 지구…300억원 설계공모부터 잡음
서울의 대표 부촌인 강남구 압구정 재건축 지구는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한강 변을 따라 지어진 15층 높이의 성냥갑 아파트들이 앞으로 50층∼70층 높이의 마천루 아파트로 재건축되면서 서초구 반포동을 넘어서는 최고급 주거단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압구정 지구는 미성·현대·한양 아파트들이 1∼6구역으로 분리돼 재건축이 진행되며, 1구역(미성 1·2차)과 6구역(한양 5·7·8차)을 제외한 현대아파트 중심의 2∼5구역이 현재 시의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서도 압구정 3구역은 지구 내 대표 사업지다.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사이에 자리한 3구역은 학교는 물론 백화점 등 편의시설, 지하철 등 교통편의를 두루 갖춘 노른자위에 위치하고 40∼50평형 이상 대형이 주력이어서 전통적으로 강남 최고 부자들이 모여 살았다.
압구정 3구역은 현재 가구수가 3천946가구로, 6개 구역 중 단지 규모도 가장 크다.
재건축 후에는 일반분양분과 공공 임대를 포함해 총 5천800가구로 건설된다. 신통기획 2∼5구역 전체 건립 가구수(1만1천830가구)의 절반가량을 3구역이 차지하는 셈이다.
서울시는 3구역의 역세권 일대를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용지로 종상향을 허용하는 대신 조합의 공공기여(기부채납)로 압구정동∼성수동을 잇는 길이 1㎞의 한강 보행교와 덮개공원을 조성해 강남·북을 아우르는 관광 명소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이기도 하다.
J&K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최근 정비사업은 소형의무비율이나 임대주택 건립, 공공기여 등으로 재건축 후에도 중대형 단지가 주력을 이루는 곳은 거의 없는데 압구정은 보기 드문 중대형 위주의 단지"라며 "재건축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서울시내 최고 부촌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첫 단추나 다름없는 설계업체 선정부터 잡음이 일고 있다.
무려 300억원에 달하는 설계 용역비로 주목받더니 공모에 참여한 희림종합건축이 신통기획상의 300%를 넘어선 360%의 용적률을 제안하면서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서울시는 희림건축을 즉각 사기 미수와 업무방해 및 입찰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신통기획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강경 대응이다.
그 사이 조합원들은 총회를 열어 희림건축을 설계업체로 선택했다.
시와 갈등을 빚고, 신통기획에서 탈락하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데도 '희림 카드'를 강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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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적률 논란의 진실…'재건축 후 주택형 감소·단지내 공공보행로' 불만
희림건축의 경쟁사인 해안건축은 압구정 3구역에 앞서 서울시 신통기획 설계를 맡은 회사다. 그러다 보니 시의 신통기획안을 철저히 따른 설계안을 내놨다.
설계업체와 조합 등의 말을 종합하면 사실상 두 업체의 승패는 단순 용적률 숫자보다 조합원 면적 증감 여부에서 갈렸다.
압구정 3구역은 1, 2, 3종 일반주거지가 혼재돼 있는데, 평균 용적률이 244%로 높아 300% 이하의 신축 용적률로는 조합원 주택 면적을 종전보다 늘릴 방법이 없다.
실제 용적률 300%를 적용한 해안건축의 설계안은 현재 전용면적이 105.45㎡인 경우 재건축 후 전용면적이 84.98㎡로, 전용 131㎡는 재건축 후 면적이 104.11㎡로 각각 줄어든다.
그런데 희림건축은 시 방침을 어기고 용적률을 360%로 높여 전 세대의 전용면적을 현행 대비 110.4%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현재 전용면적 82∼84㎡는 재건축 후 평균 92.29㎡로, 전용 105∼117㎡는 평균 122.53㎡ 등으로 면적이 증가한다. 절대적인 증가 면적은 크지 않아도 최소한 재건축으로 면적이 지금보다 줄어들지는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희림건축은 제로에너지 주택과 지능형 건축물 등 건축법과 주택법 등에 근거한 용적률 인센티브와 서울시가 마련 중인 '2030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의 인센티브 방안 등을 적용하면 용적률을 36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희림건축 관계자는 "신통기획 대상 2∼5구역 가운데 3구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용적률 300% 적용 시 주택 면적이 15%씩 늘어나는데 3구역만 감소하게 된다"며 "공공기여 금액은 3구역이 가장 많은데 정작 조합원들이 거주할 면적이 줄어드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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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희림건축도 지난 15일 열린 조합원 총회장에서는 결국 시가 요구한 용적률 300%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3구역의 전용면적은 현재보다 14% 감소할 전망이다.
희림은 용적률뿐 아니라 시가 만든 신통기획안의 소셜믹스(Social Mix) 계획도 지키지 않았다.
시의 계획안과 달리 단지 내부를 관통하도록 설계한 공공보행로를 단지 바깥쪽으로 우회하도록 해 단지 내 일반인 통행을 제한했다.
또 일반분양분과 임대주택은 준주거지역 등지로 몰아 3종 일반주거지인 조합원 동과 별도 분리했다. 외부인과 섞이지 않는 그들만의 최고급 단지를 희망한 조합원 맞춤형 설계안인 셈이다.
현재 서울시는 조합원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재공모를 요구하고 있다.
갈등이 지속될 경우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조합이 스스로 신통기획 참여를 포기하거나, 서울시가 탈락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서울시는 압구정 3구역을 주축으로 한 오세훈 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사업 성공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고, 조합은 사업 차질이 우려된다.
압구정 3구역 조합 관계자는 재공모 추진 여부에 대해 "현재 위원회를 구성해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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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재건축하네" 매수세 급증…역대 최고가 경신 속출
서울시와 조합 간 전쟁과는 별개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일대는 최근 매수 문의가 급증하면서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어서 갭투자가 불가능하지만 재건축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실입주로 '몸테크'를 하겠다는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3구역에 있는 현대6차 전용면적 144.2㎡는 최근 51억2천만원에 팔기로 약정이 돼 현재 토지거래허가 심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주택형 역대 최고가다.
4구역의 현대8차 전용 163.67㎡도 지난달 말 49억5천만원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압구정케빈중개법인 김세웅 대표는 "신통기획안 발표와 설계사 선정 이슈로 매수 문의는 크게 늘었는데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여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팔렸으나 아직 실거래가 신고 전인 매도 물건도 모두 직전 거래가보다 오른 가격이 거래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압구정 재건축 단지의 상승세가 지속될지 여부는 재건축 계획과 사업 추진 일정에 달린 것으로 본다.
압구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과거에는 35층 층고제한에 묶여 재건축 추진이 10년 이상 지연됐는데 이번에 용적률 문제로 신통기획에서 탈락할 경우 사업이 또다시 지체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오는 게 사실"이라며 "서둘러 시와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조합원 추가분담금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담금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추가분담금이 얼마가 들더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를 지어달라는 게 조합원들의 요구지만,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은 높은 추가분담금 때문에 나중에 집을 팔고 나가야 할 수도 있다"며 "최근 의사·변호사나 사업가 등 재력있는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되고 있어서 은퇴한 원주민들과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m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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