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때 우이, 보시라이 사건 때 장더장…"정치적 혼란 수습 임무"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중국 외교부장이었던 친강이 7개월 만에 단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지만, 상급자를 그 자리에 다시 앉힌 당국의 후속 조치는 전통적인 관례를 따른 것일 수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7일 진단했다.
신문은 중국 공산당이 비상시마다 당의 고위급 인사를 더 낮은 자리로 내려보내 정치적 위기·혼란을 수습하는 소방수 임무를 맡겨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친강의 후임으로 그의 전임자이자 상급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이 임명된 것 역시 공산당의 전통 교본을 따른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은 앞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물어 장원캉 위생부장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더 고위직이자 '철낭자'라 불리는 우이 부총리를 임명했다.
그에 따라 당시 국무원 직속 사스 대책 지휘본부의 총사령관인 우이 부총리가 위생부장까지 겸임하게 됐다.
당시 중국이 이례적으로 부총리를 장관인 부장에 임명한 것은 중국의 공중보건과 의료체계가 인민해방군과 기관별로 분산돼 있어 사스 통제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중앙에서 체계를 통일해 사스를 퇴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됐다.
우 부총리는 이후에도 중국산 제품 리콜 사태 등 위기 때마다 '소방대장'으로 나섰다.
중국은 이어 2012년에는 승진 가도를 달리던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가 낙마한 후 장더장 부총리가 충칭시 당서기를 겸임하도록 하며 어수선해진 충칭의 안정화 임무를 맡겼다.
천강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은 SCMP에 "중국 최고 지도부는 왕이가 소방수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분석했다.
리타오 마카오대 교수는 최근 중국 외교부장 교체는 전례를 따른 것일 수 있다면서 "장더장과 왕이는 정치적 폭풍 속 균형을 잡는 중량물(밸러스트)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SCMP는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접은 후 외교 활동을 재개하면서 굵직한 외교 이벤트가 잇달아 예고된 상황에서 왕이가 외교부장으로 복귀한 것에 '가장 안전하고 최선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28일 중국 청두시에서 개막하는 제31회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유니버시아드)에서 최소 7명의 해외 지도자를 만나고, 다음 달에는 인도에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또 10월에는 베이징에서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대형 외교 이벤트의 준비 작업을 위해 외교부장이 필요하며, 외교라인 수장인 왕이가 이에 적합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전문가 윤선은 SCMP에 시 주석의 11월 방미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위해서는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여행 일정을 잡아야 할 것이라며 "그것 역시 왕이의 우선 사항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외교부장 교체가 중국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 외교부장은 어떠한 외교 정책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최고 지도자들이 만든 정책을 이행한다"며 "왕이 역시 미국과의 관계를 포함해 최고 지도부가 지정한 같은 경로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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