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엘레나 여사 묻혔던 묘지서 제막식…유해는 현충원서 부부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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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연합뉴스) 김상욱 통신원 =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린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골이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수습된 뒤 그 자리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시기 위한 유해 수습 등 준비 절차를 마친 국가보훈부는 3일(현지시간), 엘레나 여사가 묻혀있던 비쉬켁 공동묘지에서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후손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는 이원재 주키르기스스탄 대사와 후손을 대표한 박 따지아나 독립유공자후손회장(자손재단 이사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석했다.
주키르기스스탄 대사관 관계자는 "오는 4일(현지시간) 현지에서 유해봉환식을 가진 후 7일, 티웨이 항공편으로 고국으로 유해를 봉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오는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국민추모공간을 마련하고, 광복절 전날인 14일 "백 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부부 합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또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11일 국내로 들여와 두 분을 최고의 예우로 국립묘지에 안장할 계획이다.
최 선생은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뒤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했다.
러일 전쟁 이후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총재가 되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또 대동공보(大東共報)를 인수해 재창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에 대한 기여로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추앙받았다.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는 1897년 최 선생과 결혼해 8명의 자녀를 낳았고, 안중근 의사 순국 이후 그의 가족을 보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선생 순국 이후에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세상을 떠나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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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최재형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으나, 이른바 '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돼 현재까지도 해당 묘역은 빈터로 남아있다.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후손의 요청에 따라 1970년 서울 현충원에 가묘를 건립했다.
그런데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이후 최 선생의 유족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최 선생의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이 실은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 후손이었음이 탄로 났다.
가묘 설치를 요청한 후손이 가짜였음이 밝혀진 후 서울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108호에 있던 최 선생의 가묘는 2006∼2009년 사이 멸실됐으나 실제 유족들은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이에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희망했으나, 최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이후 현재까지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
이에 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 법은 지난 달 18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시행됐다.
이번 최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시는 데는 최재형기념사업회의 대국민 모금 운동과 LG유플러스의 후원 등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도움이 됐다.
almatykim6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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