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총 게임장 시설물로…피노체트 정권 당시 실종자 가족 "반환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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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1973∼1990년 남미 칠레 군부 독재정권 기간 반정부 인사를 탄압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된 헬기가 영국 놀이시설 소품으로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 군부 독재정권에서 이른바 '죽음의 비행'을 위해 반정부 인사 등을 태웠던 H-255 기종 헬기 동체가 영국 웨스트서식스주 호셤의 한 에어소프트 파크(한국의 서바이벌 게임장 같은 곳)에 사실상 방치돼 있다.
소나무 숲 주변에 놓인 헬기는 날개와 주요 부품 없이 녹슬어 가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BB탄을 발사할 수 있는 에어소프트 건을 들고 팀을 나눠 게임을 즐기는데, 실제 헬기 동체 때문에 더 실감 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디언은 2003년 아스카리 에어로파츠라는 영국 회사가 이 헬기를 칠레 정부로부터 구입했다고 영국의 헬기 전문지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기체는 2005년 지역 에어쇼에 몇 차례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후 주요 부품이 떼어진 채 2014년께 이 공원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앞서 칠레에서는 1973년 군부 쿠데타 이후 1990년까지 이어진 피노체트 독재 정권 시절 좌파 인사나 학생, 시민운동가 등 3천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헬기로 실려가 바다나 강, 산에 버려졌는데, 훗날 이는 '죽음의 비행'으로 일컬어지게 된다.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정권에 의한 같은 방식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
칠레의 경우 2001년 리카르도 라고스 당시 대통령이 피노체트 정권 '죽음의 비행' 피해자가 최소 120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가디언은 칠레 피노체트 정권하 실종자 가족이 '죽음의 비행' 헬기가 현재 오락용으로 사용된다는 소식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며,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칠레에 반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칠레에서는 당시 정부 명령을 수행한 이들에 대한 단죄도 말끔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죽음의 비행' 조종사였던 에밀리오 로베르트 데라 마오티에레 곤살레스는 피노체트 정권 당시 반정부 요인 제거 작전에 가담한 죄로 2018년 20년 형을 받았지만, 복역 생활 3년 뒤 현재 집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형기를 채우고 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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