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15국 "6일까지 헌정질서 회복 안 하면 군사개입" 경고
니제르 군부 요지부동…당장 군사개입 조짐은 안 보여
일단 외교해법 더 모색할 듯…무력 반대론 속 준비 부족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서아프리카 15개국의 연합체인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군사 정변(쿠데타)이 발생한 니제르에 요구한 헌정 질서 회복 시한이 6일(현지시간)로 만료됐다.
ECOWAS는 니제르가 시한 안에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군사 개입에 나설 수도 있다고 경고해 온 만큼 향후 니제르 사태가 어떤 국면을 맞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ECOWAS는 니제르 군부가 지난달 26일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을 억류하고 쿠데타를 일으키자 긴급 정상회의를 열고 경제 제재를 결의하는 한편 이날까지 바줌 대통령을 석방하고 헌정 질서를 회복하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ECOWAS는 니제르가 시한을 넘길 경우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실제 지난 2∼4일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 국방 수장 회의를 열어 병력 배치 방법과 시기 등을 담은 잠재적 군사 개입안을 마련했다.
동시에 ECOWAS는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해 지난 3일 대표단을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에 파견했으나 이들은 군부 지도자를 만나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니제르 쿠데타 세력은 ECOWAS가 제시한 시한인 이날까지도 바줌 대통령을 억류한 채 요지부동인 상태다. 이들은 오히려 "니제르에 대한 공격이나 공격 시도는 즉각적인 무력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며 맞경고를 하고 나섰다.
수만 명의 니제르인도 이날 오후 니아메의 대형 경기장에 모여 ECOWAS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쿠데타 주체인 이른바 '조국수호국민회의'(CNSP)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니아메 시민인 아다마 우마루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우리는 이 혁명을 위해 싸울 것이다. 적을 마주하고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오랫동안 이 쿠데타를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ECOWAS가 '군사 개입'까지 내세우며 니제르 군부를 압박했으나 통하지 않은 셈이다.
다만 현재까지 ECOWAS가 군사 개입에 나설 직접적인 조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앞서 ECOWAS측은 니제르에 대한 무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왔고, 대부분의 분석가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압델-파타우 무사 ECOWAS 정치·평화·안보담당 집행위원도 지난 4일 국방 수장 회의 뒤 "(군사 개입을) 언제 실행에 옮길지는 각국 정상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명확한 시점을 언급하진 않았다.
그는 당시 "우리는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를 원한다"며 "우리는 니제르 쿠데타 지도부에 모든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고 있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급적 역내 무력 충돌을 피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ECOWAS 회원국 나이지리아의 국방 참모 총장인 크리스토퍼 과빈 무사 장군도 전날 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ECOWAS 국가들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하며 호전주의자가 아니다"라며 "전쟁은 더 많은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ECOWAS가 니제르에 진입할 준비가 덜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ECOWAS 회원국 중 한 곳의 고위 사령관은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현재로서는 그러한 군사 행동에 참여하기 전 우리 부대의 힘을 키워야 한다"며 "모든 군사 행동의 성공은 좋은 준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COWAS가 섣불리 군사 개입에 나서지 못하는 데에는 인근 국가의 반대 의사도 한몫한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압델마드지드 테분 알제리 대통령은 전날 현지 TV 인터뷰에서 니제르와 약 1천㎞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ECOWAS의 군사 개입은 "알제리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알제리는 니제리의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다.
ECOWAS의 군사 개입이 자칫 더 큰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니제르의 서부 접경국인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는 ECOWAS가 군대 동원 가능성을 경고하자 이튿날 공동 성명을 발표해 니제르에 대한 군사 개입을 자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맞대응했다. 니제르와 함께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두 나라에서는 최근 2년간 쿠데타로 친(親)러시아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
만약 ECOWAS가 군사 개입에 나서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 인접국으로 전선이 확대될 경우 서아프리카 전체가 출구 없는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인명 피해는 물론 가뜩이나 최빈국 수준인 경제 상황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말리, 부르키나파소에서 영향력을 확대 중인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까지 가세한다면 단순히 아프리카 내 전쟁이 아닌 ECOWAS를 지지하는 서방 대 러시아 간 물리적 대치 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방에서도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교 장관은 7일 공개된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외교적 방법뿐"이라며 "ECOWAS가 어젯밤 만료된 최후통첩 시한을 연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COWAS가 니제르에 대한 즉각적인 군사 개입보단 경제 제재를 통한 압박 수위를 높여 태도 변화를 끌어낼 가능성도 있다.
니제르는 국가 예산의 40%를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있어, 교착 상태가 길어질수록 수백만 명의 니제르인이 더 극심한 빈곤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니제르 전력의 약 70%를 공급하는 나이지리아는 쿠데타 세력 압박 카드로 에너지 공급을 중단한 상태다.
ECOWAS의 군사 개입 가능성에 경제 불안까지 겹치자 일부 니제르인은 수도를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일부는 쌀과 기름 등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여섯 아이를 둔 아스마나 라치두는 NYT에 "만약 ECOWAS가 공격해 오면 군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끝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 제재는 니제르에만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외교부는 이날 부르키나파소에 대한 개발 원조와 예산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부르키나파소의 돈줄을 죄어 니제르 쿠데타 세력과의 연대를 단절시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