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버스 맨 뒤 좌석에 앉으라고 했어요. 우리가 발가벗었고 아무것도 이해 못 한다고도 했죠. 무서웠어요."
극우성향 정당과 유대 민족주의 성향 정당들이 참여한 초강경 우파 연정이 8개월 가까이 집권 중인 이스라엘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여성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일간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언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날 오전 이스라엘 서부 소도시 아시도드에서 북부 크파르 타보르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던 여고생들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
버스 기사는 폭염 속에 탱크톱 등 짧은 옷을 입고 있던 여고생들에게 비치 타월로 몸을 가리라고 했고, 버스 맨 뒤 좌석에 앉으라고 했다. 동행한 남학생들은 맨 앞자리에 앉도록 했다.
버스 기사는 여고생들에게 "여러분은 유대 국가에 살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여러분이 성장한 키부츠에선 발가벗는 것이 괜찮다고 가르치는 모양인데 유감이다. 여러분이 성장기에 받은 교육은 최악"이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차별을 받은 여고생 가운데 한명은 "충격적이었다. 버스에는 초정통파 유대교도(하레디)들만 타고 있었는데, 모두 입을 다문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여고생은 또 "운전기사에게 항의하려 했지만, 그는 우리가 발가벗었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무서웠고 아무 말도 못 했다"고 덧붙였다.
여고생들을 차별했던 운전기사는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묻자 "초정통파 유대교도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소녀들이 그들을 존중해야 했다"고 답했다.
해당 버스 노선을 운용하는 나티브 익스프레스는 문제가 된 상황을 조사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아시도드에서는 엘렉트라-아피킴이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86번 노선버스에 타려던 여성이 승차 거부를 당했다.
버스 기사는 여성의 탑승을 거부하면서 해당 버스가 '남성 전용'이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밖에 이날 텔아비브의 라마트간에서는 버스 기사가 여자 승객과 대화하기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
남편과 함께 노선버스에 탑승한 한 여성이 운전기사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던졌지만, 기사는 여성을 무시한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여성의 남편이 운전기사에게 침묵하는 이유를 묻자 "나는 여자와 말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 2011년 대중교통 운영자가 여성에게 탑승 위치를 명령하거나 요청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굳이 법원의 판결이 아니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대중교통 이용 시 차별을 받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초강경 우파 정부에 참여한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등이 남녀 구분 등 유대 율법(할라카)을 정책에 반영하려 하는 가운데,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에서 여성들이 괴롭힘 또는 차별을 받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한 여성이 탱크톱과 반바지 차림으로 버스에 탑승했다가 버스 기사와 다른 승객으로부터 '옷 좀 입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최근에는 초정통파 유대교도 남성이 기차 안에서 장애인을 위한 4개의 특별 좌석을 독차지하는 일이 있었다.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탑승한 여성이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이 남성은 여성과는 같은 좌석에 앉기 싫다고 거부했다. 결국 여성과 안내견은 통로에 앉은 채 여행해야 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