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우드스탁 농장주 맥스 야스거씨가 계셨더라면

입력 2023-08-27 07:07  

[특파원시선] 우드스탁 농장주 맥스 야스거씨가 계셨더라면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린 미국 뉴욕주(州) 베델의 맥스 야스거 농장을 방문하려면 17번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뒤 비좁은 왕복 2차선 시골길을 20km가량 달려야 한다.
매년 8월이 되면 기념행사가 열리고, 평소에도 적지 않은 방문객이 찾고 있지만 작은 시골 마을로 가는 길은 54년 전과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사실 맥스 야스거 농장은 대규모 공연을 열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당초 주최 측도 다른 지역에서 공연을 열 계획이었지만, 그 지역의 보수적인 주민들이 '히피'와 '로큰롤'에 대한 적대감을 보여 공연 한 달 전에 개최지를 변경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장소 변경 탓에 당연히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무대만 겨우 완성했을 뿐, 공연장 주변에 울타리와 출입문도 설치하지 못했다.
표를 받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주최 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무료 콘서트를 선언했다. 3박 4일간의 공연에는 45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공연은 겨우 시작됐지만 준비 부족과 인프라 미비에 따른 위기는 계속됐다.
가장 큰 문제는 관객에게 제공할 식사가 이튿날 바닥이 났다는 것이다. 문제의 왕복 2차선 도로가 문자 그대로 주차장으로 변한 탓에 음식물을 실은 트럭이 공연장에 도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 사흘째에는 폭풍 때문에 공연장 전체가 진흙탕으로 바뀌고, 무대 시설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준비 부족에 하늘까지 돕지 않아 파행 위기에 처한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공연 장소를 대여해 준 농부 맥스 야스거의 도움 때문이었다.
당시 49세로 뼛속까지 보수적인 공화당원이었던 야스거는 록 음악이나 공연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누구든 음악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공연장에 음식이 바닥났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농장에서 우유와 요구르트를 실어 날랐다.
주최 측은 야스거가 제공한 우유와 요구르트에 각종 마른 곡물을 섞어 무료로 관객들에게 배급했다.
앞서 야스거는 관객들에게 식수를 판매하는 일부 주민들을 향해 "목마른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물을 주는 것이 올바른 행위냐"고 분노하면서 무료로 식수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에 주민들도 동참했다. 당초 베델 주민들도 조용한 시골 마을을 '히피의 해방구'로 만든 야스거를 비난했지만, "아이들을 굶길 수 없다"며 계란과 빵, 통조림을 모아 공연장으로 보냈다.

페스티벌이 위기를 넘기자 야스거는 사흘째 공연을 앞두고 무대 위에 올라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식수와 음식 등 불편을 끼쳤다"며 주최 측을 대신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50만 명에 가까운 젊은이가 모여 3일간 즐겁게 음악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했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시골 농부 야스거의 이 짧은 연설은 1970년에 발매된 우드스탁 페스티벌 LP에 지미 헨드릭스 등 록스타들의 연주와 함께 수록됐다.
대형 인재(人災)가 될 뻔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사랑과 평화의 음악 축제'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결정적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야스거는 1973년 사망했지만, 아직도 우드스탁 페스티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행사 개최 사실을 앞세워 국가 예산으로 도로와 공항부터 짓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나, 극한 환경에 몰린 청소년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기업을 향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kom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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