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러몬도 상무장관 방중의 미중 손익계산서

입력 2023-08-28 17:08  

미리 보는 러몬도 상무장관 방중의 미중 손익계산서
디리스킹, 갈륨·게르마늄 최대 쟁점…접점은 '난망'
위기관리엔 '성공'…고율관세 문제 진전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나흘 일정으로 27일 밤 중국을 찾았다. 이틀째인 28일 카운터파트인 왕원타오 상무부장과 회담을 하고 양국 쟁점 사항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양측은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 이전과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고율 관세, 수출입 문제 등 쟁점 사항에 대해 서로 의견을 개진하고 접점 찾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러몬도 장관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그리고 존 케리 대통령 기후 특사에 이어 불과 3개월 만에 4번째로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장관급 고위 인사다.
그의 방중이 일단 미·중 간 위기관리 성격도 있지만, 미·중 경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 디리스킹·광물 수출제한 '최대 쟁점'…접점 찾기 어려울 듯
그러나 현재로선 미·중 양국이 핵심 쟁점에서 한 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자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배제하는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에 초점을 맞춰 총공세를 펴고 있으나, 미국은 싸늘하다.
미국은 작년 10월 중국에 첨단반도체 등의 기술이전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 9일 첨단반도체·양자컴퓨팅·AI 등 3개 분야와 관련된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자본 투자도 규제한 상태다. 이젠 돈 줄까지 차단한 것이다.
앞서 2019년 5월부터 미국은 중국의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의 대명사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겨냥해 5G용 반도체 칩 수출을 금지했다.
작년 8월에는 미국 내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2천800억 달러(약 368조원)를 투자하면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한 반도체법(CHIPS Act)을 발효했다.
미국은 또 한국·대만·일본과 함께 중국을 뺀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 안보 때문에 디리스킹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도체·AI·양자컴퓨팅 등이 첨단 무기 제조로 이어져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이런 태도를 '차별'로 규정하고 디리스킹의 철회 또는 완화를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 손엔 미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제재와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 카드를 들고 맞선다. 미·중이 '강 대 강' 구도로 맞선 양상이다.
중국은 지난 5월 21일 마이크론의 제품이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한다며 관련 제품 구매를 중지시켰으며, 여차하면 추가 조치를 할 기세다. 중국은 미국 인텔의 이스라엘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기업 '타워 세미컨덕터' 인수 거래도 훼방을 놓아 무산시켰다.
이달 1일부터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을 시작한 중국은 상황을 봐가며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이들 광물의 전 세계 공급량 중 80∼90%를 쥐고 미국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공세에도 미국은 별다른 동요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갈륨·게르마늄에 대해선 중국 이외 대체 공급지를 확보하는 데 노력 중이고, 마이크론 사태는 이미 시장에서 충격파가 충분히 흡수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중 양국이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점에 비춰볼 때 이번에도 양측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중 상무장관 간에 논의가 깊이 있게 이뤄지더라도 성과로 이어질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 미중 고율 관세 다툼에 진전 가능성…득 되는 선택할지 주목
하지만 미국이 러몬도 장관 방중 직전, 중국에 '선물'을 건넨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 상무부는 이달 21일 27개 중국 기업·단체를 '미검증 명단'(Unverified list·수출 통제 우려 대상)에서 뺐다.
미검증 명단은 수출통제 블랙리스트의 전 단계로, 이를 삭제한 것은 그간 대(對)중국 제재 일변도 자세였던 미 행정부가 호의를 베푼 것으로 인식됐다.
이 때문인지 수줴팅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중미 경제·무역 관계는 본질적으로 호혜적"이라며 "협력은 양국과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우려하는 경제·무역 문제에 관해 미국에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며 "미국과 경제·무역 이견을 해소하고, 실무적인 협력과 심도 있는 토론을 기대한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시절 중국에 부과된 미국의 고율 관세 문제는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와서도 해결되지 않은 채 서로 팽팽하다.
고율 관세는 중국의 대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최근 수출 감소로 어려움에 직면한 중국으로선 고율 관세 문제 해결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이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해결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문제다.
러몬도 장관이 무역협상의 주무 부처라는 점에서 이 분야와 관련한 논의 진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첫 회담에서 러몬도 장관이 "우리가 직접적이고 개방적이며 실용적이라면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자 왕 부장이 "미국·중국 기업에 더 유리한 정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한 점도 곱씹어 볼 만하다.
러몬도 장관은 이번 방중 기간에 수출 통제와 양국 무역 관계를 다룰 실무그룹 구성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미·중 양국 간에 고율 관세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온다.

◇ 위기관리는 '성공'…디플레 ·부동산 위기 中, 추가 악재도 차단
미국이 3개월 새에 4명의 장관급 인사를 중국에 보낸 것은 자칫 충돌로 이어질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중국 배제 디리스킹,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과 마이크론 제재, 미·중 양국의 고율 관세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만·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우크라이나전쟁 등이 미·중 충돌로 이어지게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해 각종 경제·안보 이슈로 수년째 압박해왔고, 중국은 '대국 굴기' 기치를 들고 정면으로 맞섰던 탓에 언제든 충돌의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극구 거절하고 있는 점은 주의할 대목이다.
중국은 지난 6월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 간 회담을 하자는 미국 제안을 거절하는 등 싸늘한 분위기를 연출해왔다.
이런 때문인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방중을 앞뒀던 러몬도 장관에게 지난 24일 중국 지도자들에게 "갈등을 피하기 위해 소통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8일 전했다.
부동산·금융 위기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직면한 중국도 러몬도 장관의 방중을 통한 미·중관계 관리로 추가 악재를 차단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kji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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