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정신적 지주' 여왕 서거 1년…홀로서기 찰스 3세, 왕좌 안착

입력 2023-09-06 06:00  

英 '정신적 지주' 여왕 서거 1년…홀로서기 찰스 3세, 왕좌 안착
70년 만의 새 군주로 대관식…왕실 현대화 시도·인간적 면모
Z세대 지지 약화 속에 군주제 지속 과제…여왕·윌리엄 왕세자가 인기 더 많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70년 자리를 지켜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고 찰스 3세가 즉위한 지 곧 1년이 된다.
오랜 왕세자 기간을 거쳐 홀로서기에 나선 찰스 3세는 예상보다 순조롭게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젊은 세대로 갈수록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가운데 공화제 요구 목소리가 커지는 등 군주제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 여왕 장례식과 70년 만의 대관식
영국 최장기간 집권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작년 9월 8일 오후 3시 10분 스코틀랜드 밸모럴 영지에서 96세로 서거했다.
여왕이 리즈 트러스 전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공개한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사망 사유는 고령으로 기록됐다.
여왕은 25세였던 1952년 2월 6일에 왕위에 오른 뒤 70년 넘게 재위했다.
작년 9월 1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장례식에는 영국뿐 아니라 세계 주요 인사들이 모여 애도했다.

영국의 혼을 아는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 영국 대표 소프트파워일 뿐 아니라 세계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을 향한 예우였다.
찰스 3세는 왕위를 자동 승계했으며, 대관식은 8개월이 지난 5월 6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렀다.
74세의 찰스 3세는 1천년 전통을 잇는 화려한 예식에서 2.23㎏ 무게 왕관을 쓰고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새 군주가 됐음을 세계에 공표했다.
◇ 찰스 3세 시대, 인간적인 왕…왕실 점진적 현대화
4일 발표된 온라인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의 조사 결과에서는 10명 중 6명은 찰스 3세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왕세자 시절엔 우려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일단 즉위하자 새로운 왕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 부인 다이애나와의 이혼 등을 거치며 이미지에 생채기가 많이 난 탓에 영국인 지지를 얻는 왕이 될 수 있을지를 두고 걱정이 적지 않았다.
여왕이 마지막까지 높은 인기를 누리고 두루 인정받은 것과 대비돼 그런 모습이 더 두드러졌다.
그렇지만 국가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 에서 '여왕'은 '국왕'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다이애나의 인기가 높은 만큼 거꾸로 미움을 받던 부인 커밀라도 대관식을 거치며 왕비로 인정받게 됐다.
찰스 3세는 대관식에서 현대 영국의 모습을 반영해 다양성을 강조하는 등 시대에 발맞추는 왕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절차를 간소화했다고는 해도 물품마다 의미와 법도를 따지고, '운명의 돌'이나 '성유' 등은 운송 과정에서부터 의례를 치르는 등 전통 뼈대는 고스란히 유지했다.
또, 공식 활동을 하는 왕실 인사의 수를 줄이는 등 슬림화에 나서기도 했지만, 왕실 운영 전반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 같던 여왕에 비해서 소탈하고 인간적이며 대중에 친화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독일 국빈 방문에서 독일어로 연설하며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면서 '소프트파워'로서 역할을 확인하기도 했다.
런던대 로열 홀로웨이 칼리지의 폴린 맥클라란 교수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순탄했다"며 "대과는 없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성과도 없었다"고 말했다고 AFP가 전했다.

AFP는 예상과 달리 대대적인 왕실 개혁이 이뤄지지 않자 일각에선 여왕과 아들 윌리엄 왕세자 사이의 관리인 역할이라는 인식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론조사에서 여왕은 여전히 인기 1위이고 윌리엄 왕세자 부부도 순호감도(긍정-부정)가 각각 54와 57로, 찰스 3세 부부 28과 5보다 높다.

◇ 해리 왕자 갈등…젊은 세대 군주제 지지 약화 과제
찰스 3세는 군주제 지지 기반 약화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넘겨받았다. 여왕 즉위 때에 비해 세상도, 인구 구조도 많이 달라졌다.
당시 대관식 행렬을 버킹엄궁 앞에서 지켜봤다는 80대 영국인은 "그땐 어린아이가 황금마차를 보고 감격한 나머지 옷에 실수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아들 해리 왕자와의 갈등도 단순히 골치 아픈 가족 문제를 넘어서 왕실을 향한 민심을 싸늘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해리 왕자는 2020년 왕실을 떠난 데 이어 올해 초 자서전을 내고 가족사를 시시콜콜 폭로하면서 아버지뿐 아니라 형인 윌리엄 왕세자와도 척을 졌다.
이는 젊은 세대에서 군주제 지지가 약화하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이들은 조부모 세대와는 군주제에 관해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해리 왕자 부부를 보는 시선도 훨씬 호의적이다.
이런 배경에서 선출직 국가 원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위대가 몰려와 '내 왕이 아니다'(Not My King)라고 외치는 소리가 행사장 안까지 들려올 정도이고, 찰스 3세가 계란을 맞을 뻔한 적도 몇차례 있었다. 여왕 때라면 오히려 역풍이 불었을 일이다.

군주제 폐지 운동 단체 '리퍼블릭'의 대표 그레이엄 스미스는 BBC 인터뷰에서 조만간 군주제 유지 의견이 50%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60%선이다.
그러나 왕실 재산과 역할 등에 관한 견제 등은 커지겠지만 영국 사회의 근간이자, 엄청난 무형자산인 군주제를 없애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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