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염증 질환 앓아 2018년 파리서 수술…이후 정기 방문
2004년 알호세이마 지진 때도 나흘 뒤 피해 지역 나타나 '텐트 통치'
해외에 종종 머물러 '통치에 관심 없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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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규모 6.8의 강진이 덮쳐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왕이 부재해 정부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 8일 밤 모로코에 강진이 났을 때 국왕 모하메드 6세는 모로코가 아닌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그는 이달 1일 건강상 이유로 파리에 도착해 에펠탑 근처에 소유한 1천600㎡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모하메드 6세는 폐나 기관지 등 호흡 기관에 생기는 염증 질환인 사르코이드증을 앓고 있어, 2018년 파리에서 수술받은 후 정기적으로 프랑스를 방문한다.
모하메드 6세가 지진 소식을 듣고 파리를 떠난 건 이튿날인 9일 아침이다.
이후 모로코 정부는 국왕이 수도 라바트에서 정치·군사 고위 인사들과 함께 재난 대응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촬영해 언론에 공개했다. 이후 모로코 텔레비전에서는 내내 이 모습만 반복 재생됐다. 국왕이 공식적으로 재난에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모로코는 국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앙 집권 국가이기에 국왕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총리조차 지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었다고 르몽드는 지적했다.
이 때문에 파괴된 수십 개의 마을에 군대가 파견됐음에도 구체적인 규모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마라케시 주민들이 8일 밤부터 여진을 두려워하며 노숙하는
상황에서도 마라케시의 시장이나 지방 의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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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오마르 브룩시는 르몽드에 "어떤 공무원도 주권자에 앞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다. 이것은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모하메드 6세가 국가에 큰 재난이 닥쳤을 때 뒷북 대응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동북부 알호세이마에서 지진이 나 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도 공무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이재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당시 국왕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재난 발생 나흘 후 피해 지역에 나타나 왕실 텐트를 치고 며칠 밤을 현장에서 보냈다.
르몽드는 모로코 내 모든 것의 중심에 '국왕'이 있지만, 정작 그는 통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가 모로코를 오랫동안 떠나 프랑스나 가봉, 세이셸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보도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엔 프랑스 우아즈 지역에 그의 부친인 하산 2세가 1972년 구입한 성에서 몇 주를 보내고 돌아가기도 했다.
모하메드 6세는 이런 자신의 통치 스타일과 사생활에 대한 내부의 불만을 의식한 듯 올해 들어선 모로코에 주로 머물러 왔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부재중 지진이 발생하자 서둘러 프랑스에서 귀국한 것이다.
르몽드는 "국왕은 이 비극에 모로코 국민과 함께한다는 걸, 왕이 그들의 수호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라바트로 돌아와야 했다"며 "지진으로 드러난 문제점들을 감추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원치 않게 물려받은 특별한 역할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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