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마이크론·애플 '보안 문제' 거론…화웨이 스마트폰 애국소비 장려
美 "아이폰 사용 제한은 보복" 규정…대응 수위 고심하는 듯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이 '아이폰 사용 제한' 카드로 미국의 디리스킹(위험 제거) 압박에 본격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미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제재와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에 이어 이번엔 아이폰 제조사인 애플을 겨냥한 공세에 나섰다.
최근 중국 당국은 공무원에 이어 공기업·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아이폰 대신 화웨이의 신규 스마트폰을 쓰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 1당 체제의 중국에서 이는 전 중국인을 상대로 한 사실상 강제적인 조치로 인식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정부의 '반(反)애플 전쟁'의 막이 올랐다는 관측이 많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도 반격 카드를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 中, 마이크론 이어 애플도 '보안 문제'…공세로 변신
눈여겨볼 대목은 미국의 디리스킹에 맞서 중국이 '강공'으로 방향을 튼 기색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앞서 2019년 5월 미국이 중국의 최대 이동통신(5G) 장비업체 화웨이를 겨냥해 5G용 반도체 칩 수출을 금지하고, 작년 8월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법(CHIPS Act)을 발효한 데 이어 한국·대만·일본과 함께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를 운용하는 등 미국의 공세는 거셌다.
이에 중국은 지난 5월 21일 마이크론의 제품이 보안 위험을 초래했다면서 관련 제품 구매를 중지시켰고, 8월 1일부터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을 시작했으나 상대적으로 '낮은' 강도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아이폰을 겨냥한 이번 조치는 강도가 세다.
실제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은 13일(이하 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애플 등 외국 브랜드 구매를 금지하는 법률과 규정을 제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중국 정부는 보안을 매우 중시한다고 밝힌 뒤 "애플 스마트폰 관련 보안 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 6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겨냥해 애플과 연계해 아이폰에 악성 코드를 침투시켜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을 살펴 볼 때 마오 대변인의 언급은 사실상 보안 위험이 있는 아이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주문으로 비친다.
업계에선 그의 발언에 주목한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동향에 민감한 중국인들로선 '아이폰 불매 지시'로 받아들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선 지난달 29일 출시된 화웨이의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탑재 스마트폰이 3나노 반도체 기반의 애플·삼성전자 스마트폰에는 크게 뒤처지지만, 미국의 반도체 기술 압박·봉쇄에도 '기술 자립'을 이뤘다면서 화웨이 제품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크다. '애국 마케팅'인 셈이다.
미국이 지난달 9일 중국의 첨단반도체·양자 컴퓨팅·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 대한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미국 자본의 투자를 규제, 기술과 자본을 함께 차단한 것을 계기로 중국이 본격적인 대응을 결심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어 같은 달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미국의 디리스킹 의지를 확인한 중국이 화웨이의 7나노 반도체 스마트폰인 '메이트 60 프로' 출시로 공세를 개시했다는 것이다.
◇ '애국 소비'로 불티 난 화웨이 스마트폰…신제품 출시에도 '죽 쑤는' 애플
이런 상황에서 애플에는 비상이 걸렸다. 12일 신제품 '아이폰 15'를 내놓았지만, 중국에선 반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미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가격을 동결했는데도 그렇다.
화웨이 스마트폰의 영향이 크다. '레지던트 이블 4 리메이크' 등 고사양 게임이 가능한 아이폰 15의 기능에 환호하는 반응도 있지만, 화웨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을 고려하는 탓에 애플의 새 제품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중국 관변언론 매체들은 연일 화웨이 스마트폰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증권일보는 화웨이가 '메이트 60' 시리즈의 하반기 출하량을 20% 늘려 올해 최소한 4천만대를 내놓을 것이라는 화웨이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면서, 내년 출시량이 적어도 6천만대에 달해 "성장 동력이 가장 강한 글로벌 휴대전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팡싱둥 중국 저장대학 교수는 환구시보 기고를 통해 아이폰이 미국 정부의 비(非)시장적 보호주의와 화웨이 신제품의 부재 속에 미국과 중국에서 점유율을 높여왔다면서 화웨이 스마트폰의 사용을 권유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뉴스 포털 시나닷컴이 '메이트 60 프로'를 구매할지 또는 '아이폰 15'를 구매할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전자에 6만1천표, 후자에 2만4천표가 나왔다.
당국의 기류에 민감한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가 이미 시작됐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중국 정보기술(IT) 매체가 지난 11일 "국내 한 회사가 직원들의 아이폰 등 외제 전자장비 구매를 금지했다"고 보도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애플 배제 조치가 광범위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애플로선 중국 시장에서 사활을 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애플은 중국과 홍콩, 대만에서 전체 매출의 19%를 올리며 오랫동안 중국 스마트폰 프리미엄 시장을 지배해 왔지만, 중국 내 소비 침체에 이어 화웨이 스마트폰 애국 소비가 겹쳤다.
아이폰 15의 가격 동결도 애플의 이런 사정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애플의 주가는 13일 뉴욕 증시에서 1.19% 하락했다. 아이폰15를 공개한 12일 1.71% 떨어진 데 이어 이틀 연속 내렸다.
◇ "아이폰 금지는 보복"…격앙된 美, 대응 수위 고심
미국은 중국의 아이폰 배제 공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의 주력 정보기술(IT) 기업인 애플이 속절없이 당하는 상황에, 일단 백악관은 중국 당국의 아이폰 사용 제한 조처를 '보복'으로 규정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3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중국 당국의 아이폰 사용 금지 제한 조치와 관련해 "과거에 봤던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부적절한 보복의 일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반도체·AI·양자컴퓨팅 기술 등이 첨단 무기 제조로 이어져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디리스킹을 하지만, 이를 빌미 삼은 중국은 민간 기업인 애플을 겨냥한 보복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와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 애플 공격 카드를 들고 미국에 '강 대 강' 구도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가운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외교가에선 미 행정부가 유럽·일본 등과 함께 5G용 반도체에 이어 '4G용 반도체 수출 차단'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낼 가능성도 있지만, 최근 미국이 보여온 대중국 유화적 제스처로 볼 때 '강온 양면 전략'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디리스킹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위기관리를 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6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달 종료 예정이던 352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면제 조치를 연말까지로 연장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2018∼2019년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는 불공정 경쟁 등을 이유로 무역법 301조를 활용해 광범위한 중국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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