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거리행진 보니 환호하는 사람보다 기병대가 더 많아"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즉위 후 처음으로 이웃 프랑스를 찾은 찰스 3세 영국 국왕을 맞이한 프랑스 시민들의 반응이 역대 영국 국왕의 프랑스 방문 당시와는 사뭇 달라 이목을 끈다.
찰스 3세 국왕 부부는 2박 3일간의 국빈방문 일정이 시작된 지난 20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파리 중심가의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며 엘리제궁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에 환호하는 사람보다 기병대의 수가 더 많을 정도로 그를 맞이하러 모인 사람이 적었고, 그나마도 시민이 아닌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고 영국 BBC 방송은 지적했다.
과거에는 영국 국왕이 프랑스를 방문할 때마다 대규모 인파가 모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예컨대 1938년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6세와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왕비가 양국 간 동맹을 결속시키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파리 시민들은 일제히 나와 영국 국왕 부부를 환영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스피커에서 영국 국가가 나오자 마치 수도, 아니 프랑스 전체가 이를 따라부르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찰스 3세의 모친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즉위전 공주이던 시절까지 포함해 모두 6차례 프랑스를 국빈방문했는데 그때도 많은 인파가 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으로는 고(故) 다이애나빈과의 결혼과 이혼으로 생겨난 비호감 이미지와 함께 시대의 변화로 영국 왕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어든 상황 등이 거론된다.
프랑스 방송인 스테판 베른은 "시대가 변했다. 환호하는 군중을 기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요즘 국빈 방문은 흔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BBC는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경우 '옛 질서'를 대표하는 동시에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20세기의 수많은 시련을 극복한 인물이었던 반면 찰스 3세는 그런 상징성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BBC는 대중적 관심과 무관하게 이번 프랑스 국빈방문의 중요성은 결코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찰스 3세 부부의 국빈방문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껄끄러워진 양국 관계를 회복하고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백년전쟁(1337∼1453년)과 나폴레옹 전쟁(1803∼1515년) 등을 치르며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이어온 두 나라는 1차, 2차 세계대전과 미·소 냉전을 거치면서 그간의 앙금을 씻어내고 끈끈한 유대를 키워왔다.
그러나, 2016년 영국이 EU 탈퇴를 선언한 이후 양국 관계는 이전만 못한 모습이었는데, 영불해협을 건너는 불법이민자 대응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경쟁에 요동치는 국제정세 등을 고려하면 이를 회복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작년 10월 취임한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하고 영국-EU간 대화를 재개하는 등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여왔다.
찰스 3세도 이번 국빈 방문 기간 영국과 프랑스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20일 파리 외곽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1904년 체결한 영불 동맹을 거론하며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우호 관계를 되살리는 건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튿날 오전에는 파리 상원 본회의장에서 "국왕으로서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영국과 프랑스 간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며 "영국은 프랑스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자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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