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스라엘 전쟁에 발목…"美, 걸프전 이래 최대 외교적 도전 맞아"
新중동전쟁 확전시 미군 투입 우려까지…세계경찰론, 재선 국면서 리스크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석 달 만인 2021년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했다.
20년간 미군 병력과 엄청난 예산을 잡아먹으며 '영원한 전쟁'으로 꼽힌 아프간전을 끝내고 경제 살리기 등 내치와 중국 견제에 집중하겠다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전시 대통령'(Wartime President)처럼 돼 가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진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을 견제하면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 등을 통해 막대한 예산을 인프라 현대화·반도체 생산·청정에너지 기술 육성·제조업 부활에 투입했다.
이를 통해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성과를 견인, 재선 선거운동의 중심으로 띄우려 했다.
그러나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맹렬한 반격에 나서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뜻하지 않게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빨려들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지적했다.
이번 전쟁이 중동 전반의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초 그가 최우선 순위로 추구한 내치와 중국 견제라는 목표가 뒷전으로 밀려날 위험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호구가 아니다'라며 고립주의 노선을 천명했던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세계의 경찰'로 본격 돌아갈 경우 자칫 그 성적표에 따라 재선 국면에서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시선도 고개를 든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 필요성을 역설한 모습은 예전의 전시 대통령들을 연상시켰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우리 미국을 안전하게 한다"고 강조한 뒤 우크라이나·이스라엘 군사 지원 등을 위해 1천50억 달러(약 142조원) 규모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문제는 이번 전쟁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활동하는 레바논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지로 번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 경우 에너지 가격이 상승,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악재였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문제가 다시 악화할 수 있다고 WSJ은 전망했다.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폴 세일럼 소장은 이스라엘이 진지하게 하마스를 파괴하려고 해 수개월 이상 장기전이 지속하면 수천 명이 숨지고 레바논에 제2의 전선이 열리며 걸프만 일대 정세가 불안해지고 유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FT도 최악의 경우 이란과 헤즈볼라가 전쟁에 개입, 본격적인 '중동 전쟁'으로 사태가 악화하면 결국 미군이 다시 전투에 나서야 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직 미국 당국자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의 데이비드 밀러는 상황이 전면전으로 번져 헤즈볼라와 이란까지 개입하게 되면 "미국이 여기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FT에 밝혔다.
영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의 에밀 호카옘 국장은 현 상황에 대해 1990년 걸프전 이후 "아마도 미국이 맞이한 최대의 외교적 도전"이라며 "당시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힘이 떠오를 때였기 때문에 괜찮은 도전이었지만,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미국의 힘이) 가라앉는 때처럼 보인다"고 관측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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