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마사, 경제위기 책임론에도 본선 1위로 결선 진출 '이례적'
"페론당 뭉치면 그누구도 못이겨" 또 입증…두려움의 선거 효과?
2위 밀린 극우 밀레이 "변화 원하면 뭉쳐야"…돌풍 재점화 부심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페론당이 뭉치면 그 누구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에서 만났던 방송 프로듀서로 일하는 유권자 글로리아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두고 자신 있게 내뱉은 말이 22일(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현실이 됐다.
현 정부의 경제장관으로, 좌파 집권당의 후보인 세르히오 마사가 '깜짝 1위'를 차지하면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의 '극우 돌풍'을 차단하면서 내달 19일 결선투표에서 그와 맞붙게 된 것이다.
8월 예비선거 1위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키면서 결선투표 없이 본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다며 자신했던 밀레이 후보의 자유전진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사 후보의 본선 1위는 의미가 적지 않다.
그는 연 물가상승률이 140%에 달하고 중앙은행의 보유외환 고갈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현 경제 장관이자 대선 후보로 '경제위기 책임론'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일궈냈다.
유명 정치 평론가이자 보수 언론 라나시온지의 칼럼니스트 호아킨 곤살레스 솔라는 공식 발표 직전 현지 방송에서 "마사 후보가 1위를 차지한다면 세계 정치학 이론을 새로 써야한다"면서 "그 어떤 경우에도 여태까지 경제를 망친 후보가 승리한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1위 쟁탈은 여러 복합 요인이 결합해 작용한 결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게 '유권자의 두려움'이다.
중앙은행 폐쇄를 주장하면서 "현지화인 페소는 배설물보다 못하다"는 밀레이 후보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외환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30% 이상 폭등했다.
이는 즉각적인 가격 인상을 초래했다. 또 도매상들은 며칠간 물건 공급을 중단하는 등 상점들은 물건은 있으나 가격이 없어 판매할 수 없는 개점휴업 상태로 이어졌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밀레이 후보가 승리할 경우 선거 다음 날 모든 물가가 다시 35% 오를 것이라는 소문에 발 빠르게 반응하면서 물건 사재기에 들어갔다.
정부는 품귀현상은 없다고 발표했으나, 현지 방송과 SNS에서는 일부 지역 마트의 텅 빈 매대 사진과 함께 카트에 물건을 가득 채운 사재기 사진들이 올라왔다.
또 선거 막바지 대형 악재로 여겨졌던 '요트 게이트'에도 불구하고
마사 후보가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수도가 있는 부에노르아이레스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전 경제장관 악셀 키실로프의 공이 컸다.
여당의 유력인사가 국가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애인과 유럽에서 호화여행을 하다가 들킨 사건인 '요트게이트'의 국민적 분노는 선거 막판 마사 후보의 가장 큰 돌출 위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 정권에서 경제장관을 역임했고, 페론당 내에서 매우 청렴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키실로프가 주지사 선거에서 45%를 득표해 재선에 성공하면서 마사 후보에겐 버팀목이 돼 줬다.
아직 결선 투표가 남아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승리하면 선거(본선, 결선)에서 승리한다"는 불문율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또한 아르헨티나 교통부가 제시한 '대중교통 정부 보조금 자진 반납 등록'은 유권자들에게 정부 보조금이 없어지면 대중교통비가 10배 이상 오를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 점도 마사 후보에겐 큰 힘이 됐다.
야당은 여당의 치졸한 선거용 조치라고 맹비난했지만, 민심은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그 외에도 여당 프리미엄을 안고 소득세 기준 완화, 현금카드 사용 시 부가가치세 면제(21%) 등 유권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공약을 내놓은 게 막판에 유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지난 8월 예비선거(PASO)에선 기성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과 분노에 힘입어 깜짝 1위를 했던 극우 밀레이 후보로서는 이번 본선에서 두려움의 선거 효과 탓에 고배를 마셨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잘 아는 나쁜 놈이 모르는 새로운 놈보다는 낫다'라는 아르헨티나 속담처럼 유권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노련한 정치인 출신 여당 후보에서 표를 줬다는 것이 일부 정치평론가들의 해석이다.
또한 정계 진출 2년만에 혜성처럼 주목을 받은 자유전진당의 밀레이 후보는 정치 경험이 적고, 지지기반이 없어 대통령에 당선돼도 주지사, 소속 상원 및 하원의원 등 지원세력이 부족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여당의 공세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다.
밀레이 후보는 "불과 2년 만에 키르치네리즘(페론당의 크리스티나 대통령 노선)과 결선에서 붙게 된 것은 큰 성공이다"라고 자평하면서 4주의 결선투표에서의 드라마틱한 재역전에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밀레이 후보는 특히 결선 진출에 실패한 중도우파 후보인 제1 야권후보 파트리시아 불리치 후보의 지지표를 기대를 걸고 있다.
3위를 한 불리치 후보는 이날 선거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정부의 일원인 사람이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축하해줄 수는 없다"고 못박으며 여당의 마사 후보를 비판했다.
밀레이 후보도 이에 호응하듯 "최악의 범죄 조직인 키르치네리즘을 물리치고 변화를 원한다면 뭉쳐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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