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 부적격성 여론…심사위 불승인 판단이 '결정타'
서두르던 방통위 '급제동'…탄핵안 처리도 예고돼 식물상태 우려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오규진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29일 첩보 작전처럼 진행됐던 을지학원의 연합뉴스TV 최대주주 신청에 대해 사실상 불승인 결정을 내린 것은 을지의 인수 적절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을지의 기습적인 적대적 인수 시도와 심사 등 전례 없는 속도전은 사회적 공감과 설득을 얻는 데 실패했고, 방통위도 이를 고려해 뒤늦게나마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합뉴스TV 최다액출자자 변경 건은 을지가 지난 13일 방통위에 승인을 신청하고 나서야 공개됐고 후속 절차도 급속도로 이뤄졌다.
을지는 언론사가 보도채널 지분 30%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도록 한 방송법의 '빈틈'을 이용해 소액주주 지분을 비밀리에 더 사들였고 기존 1대 주주인 연합뉴스(29.891%)를 뛰어넘는 최대 지분(30.08%)을 확보한 뒤 방통위에 승인 신청을 했다.
전례 없는 적대적 인수 시도에도 신청 접수 사흘 만인 16일에 관련 심사계획이 의결됐고, 즉각 심사위원회가 꾸려져 24일 심사에 착수했다. 이어 심사 결과를 토대로 을지가 신청한 지 16일 만에 전체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하지만 공적 기능을 하는 보도채널의 최대주주가 갑자기 변경되는 문제가 급하게 진행된 데 대한 사회적 우려와 비판이 확산했고, 을지의 부적격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며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심사위가 을지의 보도채널 운영 능력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승인 판단을 내린 것이 반전에 쐐기를 박았다.
심사위는 을지가 연합뉴스-연합뉴스TV 간 이해충돌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보도채널로서 공적 책임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확보에만 골몰할 뿐, 보도채널 운영 능력은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사위는 또 유상증자, 자금대여, 연합뉴스와의 협약 개선 등 을지가 내세운 재원 확보 방안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고, '연합뉴스TV'라는 채널명 변경으로 인한 시청자 권익에 대한 검토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방송사업 수익을 학교법인 수익으로 전용할 우려를 제기하며 보도전문채널의 최다액출자자로 부적합다는 판정도 내렸다. 방송의 공공성보다 '배당'에만 관심을 보였던 을지학원 이사회 회의록 등이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역시 심사위 판단을 모두 인정한 가운데, 다만 을지에 처분 사전통지를 해줘야 하는 점을 근거로 일시 보류했으나 사실상 부결이라는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연합뉴스TV는 출범 당시부터 정보 주권 수호 등 공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시장 논리와 정치적 상황에 의해 급조되듯 심사가 진행되는 것은 내용과 절차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방통위가 유진이엔티가 신청한 YTN 인수 건에 더해 갑작스럽게 연합뉴스TV 최대 주주 변경 건까지 더해 추진했던 데는 야당의 이동관 위원장 탄핵안 처리 계획이 주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위원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직무 정지가 돼 변경 심사를 5~6개월 뒤에 하라고 하는 건 사실상 직무 유기"라고 한 바 있다.
다만 이날 보류하는 바람에 탄핵안 처리 시 수개월 의결이 나지 않을 우려는 있다.
방통위는 위원장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미 지난해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사태로 직원들이 구속되고 위원장이 면직되는 등 초유의 사태를 겪었던 공무원들은 급변하는 정치적 환경에 따라 또 다시 식물상태가 될까 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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