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수천명 고용해 공들였지만 비즈니스 모델 타격
"中부동산 침체, 도시 근로자 500만명에 위협"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중국 최고액 자산가(슈퍼 리치)들의 투자 성향이 보수적으로 돌아서자 미국 월가 빅뱅크(대형은행)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전문가 수천 명을 고용해 정성을 쏟았지만,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던 관련 비즈니스 모델이 이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중국 부동산 경기의 침체와 증시의 부진은 중산층의 자산도 대폭 줄이고 있다.
리서치회사인 알트라타에 따르면 중국에는 지난해 기준 순자산이 3천만달러(약 390억원)가 넘는 최상급 부자(ultrawealthy people)가 4만7천여 명에 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년보다 7% 줄어들긴 했지만, 미국을 제외한 어떤 국가보다도 많다.
씨티그룹과 JP모건, UBS 등 빅뱅크들은 몇 년간 이들을 상대로 공을 들여왔다.
중국어가 가능하고 문화적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 수천 명을 고용해 홍콩 주식이나 미국 부동산, 유럽 명화 등을 구매하게 한 것이다.
중국 부호들은 주식 매수를 위해 차익 대출을 일으키고 중국 회사들이 판매하는 정크본드(부실채권)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위험을 감수한 점 때문에 특히 환영받았다.
은행들은 고객이 주식과 채권 등을 거래할 때 수수료를 받아 잠재적 추가 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중국 본토 및 홍콩 증시의 3년간에 걸친 하락세와 중국 부동산 부문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지지부진한 중국 경제 등은 이런 비즈니스 모델에 큰 타격을 입혔다.
중국 부호들은 위험자산을 갈수록 외면하고 저축 계좌 등 다른 안전한 투자처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
씨티그룹의 켄 펑 아시아 투자전략 책임자는 "과거 일부 중국 투자자들은 15~20%의 예상 수익률을 평범하게 여기고 5% 수익률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는 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또 최근 2년간 미국의 금리 급등으로 중국 부자들은 거의 리스크 없이 매력적인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미국 민간은행 계좌를 튼 한 중국인 임원은 최고 연 7%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정기예금으로 자금을 옮겼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JP모건은 계좌 개설을 위해 필요한 주식, 현금 등 유동성 자산 기준을 2천500만달러에서 1천만달러로 낮췄다.
중국인들의 현금 선호도 또한 높아졌다.
중국상업은행과 베인앤드컴퍼니의 2023년 중국 민간 자산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 부자들은 국내 투자금의 28%를 현금 상품에 넣고 있다. 이 비율은 2020~2022년 급증했다.
일부는 금으로 눈을 돌림에 따라 UBS는 곳곳에 이들을 위한 금 보관소를 설치했다.
다른 한편으론 일부 글로벌 은행들이 돈세탁 우려로 고객의 자산 출처 확인 절차를 강화했는데, 이는 중국 부유층 고객 확보에 악재가 되고 있다.
중국 부동산과 증시의 침체는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을 보수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중산층의 자산도 크게 잠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특히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추산에 따르면 중국 가계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가운데 부동산 가격이 5% 하락할 때마다 가계 자산 19조위안(약 3천457조원)이 증발한다.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상으론 지난 7월 기준 신규 주택 가격은 2021년 8월 고점 대비 2.4% 하락에 그쳤지만, 부동산 중개기관과 민간 자료제공업체에 따르면 대도시 핵심지역의 하락률은 최소 15%에 이른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0%에서 2026년 약 16%로 감소한다는 게 블룸버그의 추정이다.
이는 500만명, 즉 도시 노동인구의 약 1%를 실업 또는 임금 감소 위험에 놓이게 한다.
금융 부문 투자 또한 자산을 불리려는 중국 가계의 노력에 역행하고 있다.
중국을 뺀 신흥 증시 지수는 올해 13% 상승했지만, 중국 주요 지수는 16% 떨어졌다.
UBS는 지난 8월 작년 중국 성인 1인당 순자산이 2.2% 감소한 7만5천731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주택 시장 침체로 비금융 자산이 줄어들어 1인당 총자산은 2000년 이후 처음 감소했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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