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인권위 "고용주가 배려 안 하면 피소될 수도"
영국서 '갱년기 불이익' 소송 잇달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정부의 독립 감시기구인 평등인권위원회(EHRC)가 갱년기 직원을 지원하는 고용주 지침을 발표했다고 BBC 등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HRC는 갱년기 증상이 일상 활동 능력에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면 장애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고용주는 근무 환경, 방식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조정을 하지 않으면 기업이 피소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손실되는 비용은 수십만파운드(수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정의 예시로는 휴식 공간 제공, 유연 근무제 적용, 시원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유니폼 규정 완화 등을 제시했다.
EHRC에 따르면 갱년기 증상은 생리 주기가 끝나는 40∼50대 여성에게 나타나며 안면홍조, 수면장애 등이 있다.
그러면서 이 연령대 여성 3분의 2가 직장에서 증상을 겪었지만 업무 조정을 요청할 경우 부정적 반응 등이 우려돼 실제로 시도한 적은 거의 없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갱년기 여성 10명 중 1명이 증상으로 직장을 그만뒀다는 연구 내용도 소개했다.
최근 영국에선 갱년기로 당한 불이익과 관련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52세 아동 사회복지사가 지난해 갱년기 증상으로 관리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해고됐다면서 레스터 시의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갱년기 증상이 장애에 해당한다고 봤다. 법원에서 이런 판단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BBC 등이 전했다.
BBC는 지난해 9월엔 49세 한 직원이 갱년기 증상 때문에 재택근무를 했다가 상사로부터 모든 일에 갱년기를 핑계로 댄다는 말을 들은 뒤 소송을 내 3만7천파운드(약 6천만원)를 배상받았다고 보도했다.
정부도 갱년기 근로자 처우를 논의 중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처음으로 한 기업의 인사부문 대표를 갱년기 고용 대사로 임명하고 고용부와 협력해 정책 제안, 홍보 등의 활동을 하도록 했다.
니컬라 스터전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51세였던 2022년 언론 인터뷰에서 고위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갱년기 고충에 관해 털어놓기도 했다.
일부 기업은 갱년기 증상을 가볍게 다루다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영국 철도회사 아반티는 지난 16일 갱년기 직원에게 부채, 젤리, 휴지 등이 든 가방을 선물했다가 모욕적이라고 비난 받았다고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부채는 땀이 날 경우, 젤리는 누군가 머리를 물어뜯고 싶을 경우, 티슈는 감정적으로 됐을 때를 위한 것이라고 돼 있다"며 그런 물품이 아니라 관련 교육·의료 정보를 제공했어야 한다는 조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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