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노리는 대통령 "국제기준 따라 변경"…'대만 대신 타이베이 사용' 中요구 수용 해석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 압박에 굴하지 않고 대만 지지 입장을 보여온 유럽 소국 리투아니아가 사실상 중국 요구를 수용해 자국 주재 '대만 대표처' 명칭을 '타이베이 대표처'로 바꾸기로 해 주목된다.
9일 홍콩 명보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국제기준에 따라 대만 대표처 명칭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오는 12일 리투아니아 대선이 예정된 가운데 재선을 노리는 나우세다 대통령은 "이번 명칭 조정은 리투아니아 정상화를 위한 신호"라고 덧붙였다.
외견상 국명 대만(Taiwan)에서 수도 명칭 타이베이(Taipei)로 바뀌는 수준이지만, 중국의 지속적인 요구와 압박을 리투아니아가 결국 수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세계 각국에 대만과 외교관계 수립에 반대하면서, 비공식 교류 차원이라면 대사관 대신 타이베이 명칭의 대표처를 두도록 요구한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의 특별행정구로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리투아니아가 2021년 11월 수도 빌뉴스에 '주(駐)리투아니아 대만 대표처'를 설치하자 중국은 크게 반발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정면으로 맞선 것으로 봤다.
유럽에서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대표처를 설치한 건 리투아니아가 처음이었다. 미국도 주미 타이베이경제문화처를 두고 있는 점과 비교해볼 때 리투아니아의 대만 대표처는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예상대로 중국은 리투아니아를 겨냥한 보복을 가했다. 주리투아니아 중국 대사를 불러들이고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 공관을 대사관에서 대표부로 격하했으며, 무역 보복과 함께 기술 교류·협력도 중단했다. 이에 따라 리투아니아는 대(對)중국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피해를 봤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굴하지 않고 맞대응했다. 2021년 12월 주중 리투아니아 대사관 전원을 본국 송환하고 중국의 제재가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어긋난 압박과 협박이라며 유럽연합(EU)과 공동 대응했다.
리투아니아는 다른 EU 회원국과는 달리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낮다. 리투아니아는 정밀 레이저 기술 분야에 강점을 가져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과 협력을 가속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2022년 1월 타이베이에 자국 대표처를 개설했으며 2023년 1월에는 리투아니아 의원 대표단이 대만을 찾아 차이잉원 총통을 만나는 등 '친(親)대만 행보'를 이어왔다.
이 같은 대치 속에서 중국이 작년 11월 리투아니아에 대한 제재를 풀었다. 미·중 관계 악화 속에서 유럽과 날 선 대치를 피하려는 중국이 유럽의 소국에 백기를 든 형국이었다.
외교가에선 사회민주당 등 리투아니아 내에서도 친중국 분위기가 있는 상황에서 재선 승리를 위해 나우세다 대통령도 대표처 명칭 변경을 통해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으로 본다.
인구 280만명 소국인 리투아니아는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합병돼 침탈을 경험한 국가로 1990년 3월에 독립을 선언했으며,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리투아니아는 이 같은 외세 침탈을 경험했던 터라 대만에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자유시보와 명보 등 중화권 언론은 대만 외교부가 "리투아니아의 대만 대표처 명칭 변경에 대해 양측이 신중한 협의 끝에 합의해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이날 보도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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