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기류 변화 시사…국내 반발 여론 의식한 듯
여전히 말 아끼는 네이버…"정해진 것 없다" 신중 모드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대통령실이 이른바 '라인 사태'와 관련해 네이버가 일본 소프트뱅크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라인야후 경영권 문제의 중대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대통령실의 이런 움직임은 네이버의 라인야후 경영권이 소프트뱅크에 넘어가는 시나리오에 대한 국내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 대통령실 "日 보고서에 지분매각 안 들어갈 것"…말 아끼는 네이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4일 통화에서 라인야후 사태와 관련해 "네이버 측과 계속 소통해왔고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에 네이버의 지분 매각과 관련한 내용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고서에 지분 매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이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전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네이버가 좀 더 진실되고 구체적인 입장을 주는 것이 정부가 네이버를 돕는 데에 최대한 유리할 것"이라며 네이버에 구체적 입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네이버에 추가 입장을 요구하며 사실상 불만을 나타낸 지 하루 만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 셈으로, 정부의 기류 변화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네이버가 라인야후 경영권(라인야후 대주주 A홀딩스 지분으로 네이버와 소프크뱅크가 50%씩 보유)을 매각하지 않기로 결정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불합리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버는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웹툰 등 일본 내 다른 사업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크게 우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 10일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뒤 신중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14일에도 "협상에서 정해진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그간 IT(정보기술)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협상에서 지분 매각에 무게를 싣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최근 라인야후가 이사회에서 유일한 한국인 멤버이자 사실상 네이버를 대표하는 '라인의 아버지'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를 제외해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를 완전히 주도하게 된 데다 네이버로부터의 '기술 독립' 추진을 밝히는 등 '네이버 지우기'를 노골화해 다른 선택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네이버가 지분을 팔 경우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투자나 인수·합병(M&A)을 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또 다른 배경이다.
그러나 네이버와 지분을 싸게 매입하려는 소프트뱅크의 입장 차이가 크면서 협상이 진통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 정치권·시민사회로 확산한 라인 사태…반일감정 확산 조짐
대통령실이 지분 매각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정치권과 여론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볼 수 있다.
IT 공정과 정의를 위한 시민연대 위정현 준비위원장(중앙대 다빈치가상대학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라인 사태와 관련한 정부 기류가 약간 바뀐 것 같다"며 "국내 여론이 워낙 안 좋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라인 사태는 정치권 공방으로 번지면서 정부에 큰 부담이 됐고 자칫 반일 여론이 증폭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야권은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고 행정지도를 내린 데 대해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실패'로 규정하며 공세를 이어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4일 "정부 대응이 미진하고 소극적이면 국회라도 나서야 한다"며 라인 사태의 현안 질의를 위한 과방위 전체 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날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 왜곡, 독도 영토 야욕, 한국 기업 강탈 시도까지 일본의 횡포는 전방위적이고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 외교가 불러온 결과"라고 비판했다.
여권 내에서도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와 인터뷰에서 "라인야후를 잃는 것은 한마디로 따지면 앞으로 펼쳐질 사이버 세상에서 우리 영토를 잃는 것과 같다"며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전화해 '선을 넘는 것은 안 된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루 전인 13일에는 네이버 노조가 "라인 계열 구성원과 이들이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에 대한 보호가 최우선"이라며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위정현 위원장은 "정부는 일본의 행정지도에 지분 매각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못 박고 보안 문제에 집중하면 된다"며 "한일 양국이 공조해 라인 사태의 보안 개선책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브리핑에서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자본구조 변경을 제외한 정보보안 강화 대책을 제출하고자 한다면 네이버에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 3월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이버 보안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나섰다.
앞서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되면서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하던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수십만건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과거 NTT를 비롯한 일본 기업이나 제3국 기업 등의 개인정보 유출에 비해 고강도의 '행정지도'에 나섰고 네이버 최수연 대표는 이에 대해 "이례적"이란 평가를 한 바 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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