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일본인을 이해하려면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마음)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속마음을 숨길 때가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문화적으로 솔직한 감정이나 기분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일본인 특성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혼네'와 '다테마에'가 종종 거론된다.
양국 정상간 셔틀외교 재개 등 한일 관계가 개선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최근 라인야후 사태가 복병으로 불거졌다.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하던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한 데 대해 일본 총무성이 올해 3월 5일과 4월 16일 통신의 비밀보호 및 사이버 보안 확보를 위한 행정지도를 실시한게 발단이 됐다. 총무성이 같은 사안에 행정지도를 두차례나 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라인야후를 상대로 자본관계 재검토까지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인 네이버 기술로 키운 라인을 빼앗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적성국도 아닌 한국 기업을 상대로 '사실상' 지분 매각을 요구하고 나선 일본 정부 속마음은 무엇일까.
물론 일본 정부가 라인의 사이버 보안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국민메신저' 역할을 하는 카카오톡처럼 일본 사회에서는 라인이 일상생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선 지난 3월 현재 일본 내 사용자 수(MAU)는 약 9천7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80%에 육박하니 일부 고령자나 영유아를 제외하고 스마트폰을 보유한 일본인이라면 거의 사용하는 셈이다. 대형 쓰레기를 버릴 때도 라인으로 예약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행정시스템과도 연결돼있고 직장인들이 업무용으로 쓰는 라인웍스와도 연계돼있다. 사실상 공공 인프라 수준의 기능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동안 라인이 반복해 보안에 허점을 보인 측면도 있다. 총무성은 지난 2021년에도 개인정보나 통신비밀 등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하라고 행정지도를 한 바 있다. 라인이 서비스 개발을 맡긴 중국 업체 직원이 일본 서버에 보관된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일본 언론이 보도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총무성은 중국 업체 직원의 접근 권한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 부여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가 있다며 빈틈없는 조치를 취하고 보고하도록 주문했다. 당시 개인 정보 누출은 확인되지 않았다.
총무성은 이번 행정지도를 통해 자본관계의 재검토를 요구한 이유로 "경영권 관점에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업무를 위탁받는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함께 사실상 공동 대주주여서 라인야후가 제대로 관리·감독하기 어려운 만큼 위탁처의 적절한 관리를 위해 내린 요구라는 설명도 한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행정지도 때 경제안보의 관점이 고려됐는지와 자본관계의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받고서 "행정지도 내용은 안전관리 조치 등의 강화와 보안 거버넌스의 재검토 등을 강구하도록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에는 다양한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위탁처 관리가 적절하게 기능하는 형태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보안강화를 위한 순수한 뜻에서 자본관계의 재검토를 요구한 것이라는 뜻이다.
라인의 보안강화를 강조하는 일본 주류 세력의 속마음에는 한국 기업에 개인 정보 관리를 맡길 수 없다는 데이터 주권에 대한 인식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면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경제안보 정책의 수장인 경제안보담당상을 지낸 고바야시 다카유키 자민당 의원은 "국민 데이터는 가능한 한 일본 주권이 미치는 범위내에서 보관해야 한다"며 "보안 문제 등에 입각해 내 자신은 라인을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일본 주간지 '슈칸 분슌'(週刊文春)에 최근 말했다. 고바야시 의원의 뒤를 이어 현재 경제안보담당상을 맡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의원도 라인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기념일마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온 우익성향의 정치인으로 아베 신조 정권 시절에는 총무상을 맡아 역대 최장 재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들과 접촉해 라인 사용 여부를 확인한 '슈칸 분슌'은 다카이치 의원이 라인의 거버넌스가 국가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을 보였다고 전했다.
다만 라인의 자본관계 재검토를 요구한 일본 정부의 속마음이 무엇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네이버가 최대주주 지위를 내려놓아야 일본 정부 요구가 충족된다.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결산설명회에서 "(우리는) 모회사 자본 변경에 대해서는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면서 "소프트뱅크가 가장 많은 지분을 취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네이버에 대한 업무 위탁 종료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기술적 협력관계에서도 독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결산설명회를 연 소프트뱅크 야카와 준이치(宮川 潤一) CEO는 "라인야후 요청에 따라 보안 거버넌스와 사업전략 관점에서 자본 재검토를 협의 중"이라며 이미 네이버측과 협상 중임을 밝혔다. 그러자 명확한 설명을 피하던 네이버도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확인했다.
지분 관련 협상의 핵심은 매각 주식 수량과 매각 대금 등 거래 조건일 수밖에 없다. 제3자로서는 거래 주체인 소프트뱅크와 네이버 경영진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최소한 협상이 총무성이 요구한 보고 시한인 7월 1일은 넘길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 미야카와 준이치(宮川 潤一) 최고경영자(CEO)는 "7월 초까지 정리되기에는 매우 난도가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에 네이버의 지분 매각과 관련한 내용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보고서에 지분 매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 강화와 지분 매각을 둘러싼 '고차방정식'을 놓고 한일 양국 정부와 각 협상 주체간 '동상이몽'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언론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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