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란대선] 보수 양강, 라이시 향수 자극…개혁후보 유세는 돌연 취소

입력 2024-06-27 09:39  

[현장@이란대선] 보수 양강, 라이시 향수 자극…개혁후보 유세는 돌연 취소
뙤약볕 땀범벅 속 선거운동 마지막날 후보들 막판 총력전…
라이시, 테헤란 연설서 "라이시 과업 완수"…잘릴리는 라이시 묻힌 시아파 성지로
'개혁' 페제시키안 일정은 해산명령, 지지자들 자체 집회…"여러분 선택에 미래 달려"


(테헤란=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 이틀 전인 26일(현지시간)은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이었다.
막판까지 압도적 선두가 부각되지 않는 혼전 양상 속에 대선후보 6명은 각자 대규모 유세를 벌이며 한 표를 호소했다.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보수진영 유력 후보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마즐리스(의회) 의장과 유일한 중도·개혁 성향 후보 마수드 페제시키안 의원의 유세·집회 현장을 직접 찾았다.
갈리바프 의장은 이날 오후 4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샤히드 시루디 종합운동장에서 피날레 연설을 했다.

연합뉴스와 AFP, 교도 등 해외 뉴스통신사는 물론 IRNA와 같은 이란 국영매체 취재진에게도 행사 시작 1시간 반 전까지 장소로 오라는 사전 공지가 전달됐다.
각국 언론인들은 낮 최고기온 38도에 이른 뙤약볕 속에서 취재장비를 특수 차량에 설치된 엑스레이 검색장비로 살피는 보안 검사를 거쳤다. 한 현지 기자는 다른 후보들 캠프에서는 이같은 요구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출신이자 현직 의장인 만큼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듯 했다.
체육관 옆 한 귀퉁이에 설치된 차양막 앞에 검은색 차도르 차림의 여성들이 몰려들어 캠프 관계자들이 제공하는 물과 도시락을 앞다퉈 받아갔다. 시아파 이슬람 기념일 '이둘 가디르'였던 전날 도심 거리 곳곳에서 목격했던 장면들과 비슷했다.
현지 선거법상 유권자에게 음식물을 나눠주는 행위가 금지돼있다고는 하지만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이런 상황이 익숙해보였다.

총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에 지지자들이 가득 들어찼다. 냉방 용량이 더위를 감당하기에 부족했던 듯 실내 공기가 뜨겁고 습했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갈리바프의 얼굴이 인쇄된 전단지를 접어 바람을 부쳐대기 바빴다.
좌석에 성별 구분은 없었지만 미리 약속한 듯 여성들은 남성들과 뒤섞이지 않고 체육관 오른쪽 스탠드에 모여 앉았다.
연설 시작 30분 전 대형 스피커에서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노랑과 빨강 등 화려한 색상의 이란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여성과 아이들의 노래 공연, 중년 남성의 이슬람 경전 쿠란 구절 암송이 이어졌다.
캡 모자를 눌러쓴 한 청년은 갈리바프를 왜 지지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슬람혁명의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토지 분배, 복지카드 지급 등 공약이 적힌 현수막을 가리키며 "그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4시가 다가오자 진행자의 리드에 따라 참석자들이 "갈리바프"를 연호하며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곧이어 갈리바프 의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는 환호로 가득찼다. 그는 귀빈석을 돌며 악수와 인사를 건네느라 한참을 보낸 뒤 무대 위로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전날까지 지방 일정을 소화한 갈리바프 의장은 계속된 유세 때문인지 쉰목소리로 "순교한 라이시 전 대통령의 길을 따라가 미완의 과업을 완수하겠다"고 외쳤다.
그는 약 20분간 연설을 통해 "부패를 뿌리내리게 하는 무질서와 비효율을 근절하겠다"고 강조하며 고물가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대응책, 히잡 단속 완화 여부 등 민감한 주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행사를 마칠 때가 되자 기자의 웃옷과 바지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 35도인 기온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개혁 성향으로, 의외의 선전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페제시키안 의원의 집회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연설이 예정된 오후 8시를 한시간쯤 앞두고 일정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상황을 확인하고자 곧장 가본 헤이다르니아 체육관 앞 거리는 경찰의 제지로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한 지지자들이 몰려들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친구와 연설을 들으러 왔다는 한 여성은 기자와 대화하던 중 갑자기 경찰이 큰소리로 해산을 명령하자 깜짝 놀라 자리를 피했다.
현장에 배치된 보안 인력들이 "허가받지 못한 행사"라고 설명하며 체육관 입구에서 먼 쪽으로 지지자들을 몰아내자 한 남성 지지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반발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점차 땅거미가 지자 한 여성이 큰소리로 "캠프 사무실 앞으로 옮겨 집회를 열자"고 외쳤다.
지지자 수백명은 근처 선거캠프 건물 앞으로 자리를 옮겨 지지 집회를 이어갔다.
한 관계자는 "테헤란 연설에 앞서 예정된 페제시키안 의원의 타브리즈 지역 유세에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몰렸다"며 "당국이 타브리즈 현장부터 통제하라는 이유를 들어 테헤란 유세 허가를 취소했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페제시키안 의원은 이날 밤 엑스(X·옛 트위터)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여러분의 선택에 이란의 미래가 달렸다"며 "오늘 밤 나의 이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달라"고 한 표를 호소했다.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이자 '충성파'로 분류되는 사이드 잘릴리 전 외무차관은 지난달 헬기 추락으로 숨진 라이시 전 대통령이 묻힌 '시아파 성지' 마슈하드를 찾았다. 그는 갈리바프 의장과 함께 보수 진영 후보군내에서 '양강'으로 꼽혀왔다.
그는 라이시 전 대통령을 모친을 찾아 위로하기도 했다.
잘릴리 전 차관은 이날 TV 인터뷰에서 "지금은 기회를 낭비할 때가 아니다"라며 "지난 8년간의 경기 침체와 마이너스 성장을, 지난 8년간의 낭비와 실수와 불의를 만회해야 한다"고 경제 살리기에 역점을 둘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실체가 없는 국정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지친 청년들에게 역할을 주며 혁명 지도자의 길을 계속 걸어나겠다"라고 말했다.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은 이맘호세인 광장 연설에서 2021년 대선 때 라이시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을 내려놓은 일을 거론, "이번에는 그만두지 않는다"며 레이스 완주 의지를 다졌다.
무스타파 푸르모하마디 전 법무장관은 테헤란 배구회관에서 집회에 이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편 아미르호세인 가지자데 하셰미(53) 부통령은 라이시 전 대통령 유족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순교자 라이시의 업적을 지켜내겠다"고 밝힌 뒤 SNS로 후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보수 진영 후보는 5인에서 4인으로 줄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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