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부터 '5등급 슈퍼태풍' 맞은 카리브해…"기후변화 영향"

입력 2024-07-04 16:29   수정 2024-07-04 17:58

초여름부터 '5등급 슈퍼태풍' 맞은 카리브해…"기후변화 영향"
100년래 가장 일찍 발생한 슈퍼태풍 베릴에 곳곳 피해 속출
"적도 부근 대서양 온도 예년 늦여름 수준까지 오른 탓"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최근 100년 사이 발생한 허리케인 중 가장 이르게 '5등급 슈퍼태풍'으로 발달한 베릴(Beryl)이 카리브해 일부 지역을 초토화하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베릴은 지난달 28일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에서 동쪽으로 2천㎞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처음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최고 풍속 시속 60㎞ 이하의 열대성 저기압이었다.
하지만 베릴은 불과 42시간 만에 최고 풍속이 시속 180㎞를 넘는 대형 허리케인이 됐다.
최근 들어 열대성 저기압이 태풍으로 발달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이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고 위험하다고 평가된다고 BBC는 전했다.
베릴은 또한 열대 대서양에서 이례적으로 일찍 형성된 강한 등급의 허리케인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6월에 발달한 4등급 이상의 허리케인으로 기록됐다.
서쪽으로 이동해 카리브해 일대를 덮친 베릴은 이달 2일 새벽 최고 등급인 '카테고리 5' 태풍으로 발달해 최대 풍속이 270㎞에 달했다. 지금은 4등급으로 다소 위력이 약화한 상태로 자메이카 등지에 막대한 비를 뿌리고 있다.
BBC는 베릴이 "최근 100년 사이 연중 가장 이른 시기에 등장한 5등급 대서양 허리케인"이라며 7월에 5등급 대서양 허리케인이 나타난 것도 "2005년 7월 16일 5등급에 이른 허리케인 에밀리가 유일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해수면 온도가 이례적으로 높게 치솟은 것이 태풍의 형성 속도와 위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해수면 온도가 높을수록 태풍이 더 많이 생겨나고 위력도 강해진다.
그런 까닭에 4∼5등급의 강력한 태풍은 태양열로 해수가 충분히 데워진 뒤인 늦여름에나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초여름부터 8월 말이나 9월 수준의 열에너지가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대서양 열대권에 축적되면서 일찍부터 5등급 허리케인이 나왔다는 것이다.
미국 로언대학 조교수인 안드라 가너 박사는 "우리는 이 행성을 데우고 있으며, 해수면 온도 역시 높이고 있다"면서 "따뜻하게 데워진 바닷물은 허리케인의 핵심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소속 전문가 무라카미 히로유키도 "베릴이 이렇게 일찍 발달하는 데에 기후변화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우리 기후모델은 지구온난화로 태풍의 평균 위력이 더욱 커질 것임을 시사했다"고 경고했다.

한편 올해 전례 없이 일찍부터 대형 허리케인이 발생한 데는 엘니뇨(동태평양 적도 해수온 상승) 현상이 최근 끝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엘니뇨 현상은 날씨 패턴에 영향을 미쳐 대서양에서 강한 태풍이 출현하는 걸 방해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엘니뇨와 반대로 대서양 태풍 발생을 촉진하는 라니냐(동태평양 적도 해수온 저하)가 나타나 태풍이 더욱 많이 생겨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NOAA는 올해 허리케인 시즌(6∼11월) 발생할 대형 태풍이 평균 3개였던 예년 수준을 뛰어넘어 4∼7개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가너 박사는 "전례가 없긴 하지만 베릴은 온난화된 기후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해 온 극단적 사례들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면서 이런 재해가 더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온실가스 저감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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