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이삿짐 부쳐주고 집배원은 동네 순찰대·취약층 돌보미
"이용자 적다고 없앨 수 없어"…공적 활동·사업 확대로 '살 길'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우체국이 김치 포장하는 법 들어보시겠어요? 김장용 비닐 2겹 이상 싸기, 금속 재질의 캔에 김치는 60∼70%만 채우기, 케이블 타이로 꽉 묶기, 날씨에 따라 아이스팩이나 산소흡수제 동봉하기… 상자 속은 신문지로 채우고 겉면 전체에 테이핑해야 터지지 않고 안전하게 배송됩니다."
인구 2천 명인 시골 마을 경남 진주시 금곡면에 있는 금곡우체국은 해외 이민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자주 나타난다.
외국에서 한국 물건을 배송받고 싶지만, 한국 내 주소가 없는 이민자나 이민, 유학 등을 떠나려는데 큰 비용이 드는 컨테이너 이사 대신 싸고 안전하게 짐을 부칠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우체국 해외 배송 대행 서비스 홍보 글을 자주 올리는데, 짐 싸기 '꿀팁'이 쏠쏠한 인기를 끈다.
금곡우체국이 해외 이민자 카페 여러 곳에서 열심히 홍보 활동을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다.
금곡우체국은 우체국이 없는 지역에 우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 국가가 위임한 사업자가 우정 사업을 맡는 별정우체국인데, 인구 감소의 타격이 큰 작은 면에 위치하다 보니 사업성은커녕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난 2월부터 금곡우체국을 인수해 운영 중인 우체국장 서규승 씨는 "해외 배송 대행 서비스가 수익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한 달에 평균 60∼70건 유치하다 보면 매출을 올리는 데는 도움이 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만 실적을 채우려면 너무 힘이 드니까요"라고 말했다.
매출 실적이 일정 정도 유지돼야 우체국 운영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들더라도 '인터넷 발품'을 팔아 유치한 해외 배송 대행 고객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해외 배송뿐 아니라 국내 온라인 판매자들의 배송 수요를 위탁받는 등 변해가는 세태에 맞게 영업을 잘하는 시골 우체국들도 많이 있다"면서 "지역 고객들은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응대에 3∼4배 넘는 노력이 들지만 나름의 자구책을 찾으면서 우체국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해외 배송 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한 캐나다 이민자는 네이버 카페에 '한국 우체국 서비스는 세계 최강'이라는 제목으로 "필요한 약을 지역에서 가장 저렴하게 파는 약국까지 찾아가 구입해주는 등 친절한 서비스를 경험했다. 영세한 우리나라 우체국들이 잘 되길 바란다"는 후기를 남겼다.
금곡우체국 외에도 전국에 있는 별정우체국은 697개국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해외 배송 대행 서비스를 하는 곳은 105개국이다. 이들은 올해 1분기 38억원의 국제우편 매출을 올렸다.
우정사업본부는 국제우편 비중이 40% 이상인 별정우체국을 국제우편 특화우체국으로 선정했다. 15곳 모두 충남 부여, 강원 횡성, 경북 상주·봉화·김천·군위·의성, 경남 남해, 전북 정읍, 전남 화순·영암·구례·나주 등 인구 소멸 지역에 위치한다.
시골 우체국만 활로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의 우정 당국도 인구 감소 속 우정 인프라를 유지하고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활로를 모색 중이다. 주로 공적 역할을 강화하면서 '왜 곳곳에 우체국이 있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데 힘쓴다.
바빠진 것은 집배원들이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본캐'에다 동네 순찰대, 치매 환자, 고립사 위험군 등 취약계층 돌보미 등 '부캐' 역할을 하게 된 탓이다.
부산지방우정청과 부산경찰청은 지난 5월 협약을 맺고 부산 소재 집배원 1천여명을 경찰 치안 업무를 지원하는 '우정 순찰대'로 임명했다.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범죄 의심 행위나 거동 수상자를 발견하면 신고하고 보안등, CCTV 등 보안 시설 파손을 경찰에 공유한다.
부산지방우정청은 부·울·경 지역에서 음식점,카페 등 245곳을 골라 '우체국 추천 맛집 가이드'로 만들어 지역에 배포하는 맛집 소개 플랫폼 역할도 자처했다.
우정 당국 관계자는 "아무리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가 와도 우체국은 꼭 필요한 공적 역할이 있는데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로 인구가 적은 지자체에서는 우체국을 운영, 유지하기에 재정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각지에서 공적 역할 수행이나 서비스 확대 등으로 나름의 활로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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