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형제 모두 6·25 참전, 둘만 생환…북아일랜드 로리머 가족

입력 2024-07-26 09:00  

세 형제 모두 6·25 참전, 둘만 생환…북아일랜드 로리머 가족
두 아들 '실종'에 어머니는 英정부에 '남은 아들' 귀환 호소 편지
정전협정 71년 맞은 유족 "한국민이 우리 기억해줘 가슴 뭉클"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1951년 영국 북아일랜드 북동부의 밸리미나 출신 세 형제는 6·25 전쟁의 포연에 휩싸인 한반도에서 유엔군 소속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해 1월 경기 양주와 고양 일대에서 영국군과 중공군이 맞붙은 '해피밸리 전투'가 벌어졌을 때 막내인 22살 토머스 로리머가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전우들과 함께 평양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보다 11살 위의 맏형 윌리엄 로리머는 같은 해 4월 임진강 전투에서 실종됐다.
고향에 있던 세 형제의 어머니는 영국 정부에 '남은' 한 아들 대니얼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둘째 대니얼 로리머는 그해 영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막내 토머스 로리머의 딸 메리앤 스콧(69) 씨가 들려준 가족사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연상되는 이야기다.
스콧 씨는 주영 한국대사관이 정전협정 체결 71주년(7월 27일)을 앞둔 지난 23일(현지시간) 런던 영국공군클럽에서 참전용사·가족을 위해 연 위로 오찬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같은 가족사를 들려줬다.
포로로 잡혀 있던 토머스는 정전 이후인 1953년 9월 영국으로 귀환했고, 그해 성탄절 연인 캐시와 결혼해 스콧 씨를 비롯한 세 딸을 낳았다. 2022년 별세할 때까지 고향 밸리미나에서 여생을 보냈다.

스콧 씨는 "아버지께 한국에 파병된 게 회한이었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며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러 그곳에 갔던 것'이라고 하셨다"고 생전 부친과 나눈 대화를 회상했다.
로리머가는 '군인 가족'이었다. 로리머 세 형제의 아버지는 1차 대전에 참전했고 고모 마거릿도 2차대전 때 해군 여군(WRENS)이었다.
맏이 윌리엄은 2차대전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참여했던 군인으로, 부인과 어린 두 자녀를 남겨두고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1951년 33세 나이로 전사한 것으로 2년 뒤 확인됐다.
먼저 귀환한 둘째 대니얼은 영국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부인, 네 자녀와 함께 고향 밸리미나에서 1994년 별세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스콧 씨는 2019년 임진강·가평지구 전투 기념행사 당시 한국 정부 초청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 90대였던 아버지 토머스는 연로했던 터라 함께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큰아버지 윌리엄의 묘에 "동생 토미와 캐시, 가족들이 사랑하는 기억을 담아. 절대로 잊히지 않으리"라는 추모의 메시지를 놓아뒀다.

이번 정정 71주년 기념 참전용사·가족 오찬에도 초청받은 그는 "대한민국이 우리 가족의 희생을 아직도 얼마나 감사히 여겨주는지 보게 돼 가슴 뭉클했다"며 "다른 참전용사들을 보니 마음이 겸허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토머스는 생전에 많은 전우를 잃은 아픔에 참전했을 때의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 딸이 이를 기억해주기를 바랐다고 스콧 씨는 전했다.
스콧 씨는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군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면서, 후대가 이러한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민이 아직도 우리를 생각해주는 만큼, 우리 세대도 그분들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내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를 더 알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한다"며 "이제는 자유를 많이 누리니 젊은 세대가 (자유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잊는 것 같다. 역사에서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chero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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