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 가보니…'강제'는 없었다(종합)

입력 2024-07-28 21:31   수정 2024-07-29 10:58

[르포]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 가보니…'강제'는 없었다(종합)
"암반뚫기 등 더 위험한 작업" "한달 28일 작업" 불구 '강제 연행' 표현 빠져
'조선인 1천519명' 명시하고 사망·노동쟁의 사실 전했지만 의미 '반감' 지적



(사도[일본]=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기타자와 지구에 있는 '부유선광장'(浮遊選鑛場)은 28일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사도 광산의 근대유산인 부유선광장은 녹색 식물이 웅장한 건물 외벽을 뒤덮어 풍광이 독특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전날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지만, 부유선광장은 유산 구역에서 제외했다.
이곳에서는 과거 채굴 단계에서 나오는 금속과 폐기물 등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인구가 5만 명 남짓인 사도시에서 손꼽히는 명소인 부유선광장 바로 옆에는 이날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 공간이 새롭게 마련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이 있다.

일본은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유산 시기를 에도시대 중심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시기가 포함된 근대를 배제했다. 세계유산위원회도 이 시기의 사도 광산에 가치가 있다고는 인정했다.



하지만 사도 광산에서는 근현대까지 채굴 작업이 이어졌고, 그 흔적 중 하나가 바로 부유선광장이다. 사도 광산에는 조선인 약 1천500명이 동원됐다고 알려졌다.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이러한 역사를 외면하려 하자 한국은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고 거듭 요구했고, 결국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등재 이튿날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을 열었다.

이러한 조치는 일본이 또 다른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군함도'(하시마 탄광)를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뒤 유산 소재지가 아닌 도쿄에 2020년에야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만든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일각에서는 나왔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일본 근대 산업시설에서 일한 조선인이 차별받지 않았다는 왜곡된 주장만을 늘어놓아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자는 전시물이 어떤 내용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옛 사도 광산 본부 사무소와 어료국(御料局) 사도지청 건물이 복도로 연결된 형태였다. 어료국은 일본 왕실 관련 업무를 담당한 궁내성이 관할한 조직이다.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 생활'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실은 입구에서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올라가니 나타났다. 전시실 공개에 맞춰 배포된 안내 자료에 따르면 전시실 위치는 옛 어료국 사도지청 건물 2층이었다.
전시실은 면적이 약 22㎡로 그다지 넓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입구 오른쪽에는 1935∼1954년 무렵 사도 광산에서 사용됐다는 도시락통이 놓여 있었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벽면에는 박물관 주변 조선인 노동자 관련 장소를 표시한 지도가 보였다.
지도를 살펴보니 도보로 15∼25분 거리에 조선인 기숙사와 공동 취사장이 있었다. 건물은 사라지거나 다른 건물로 대체돼 당시 생활상은 알 수 없는 듯했다.
일본 정부는 기숙사 터에 해당 장소가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된 곳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우기로 약속했다. 안내판 문구와 설치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일본 정부는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세울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에는 옛 사료 복제본이 걸려 있었고, 오른쪽 벽면에 조선인 노동자를 소개한 일본어·영어 패널들이 있었다.
조선인 노동자 관련 일문 패널 제목은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의 전시(戰時) 중 가혹한 노동환경', '아이카와 광산 노동자의 생활',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 출신지'였다.
한 패널에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자와 비교해 위험한 갱내 작업에 종사한 사람 비율이 높았다", "한반도 출신자는 1개월 평균 작업일이 28일이었다는 기록도 있다"는 설명이 있어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보다 더 힘든 일을 하도록 내몰렸고 처우도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삭암'(削岩), '지주'(支柱), '운반'(運搬)이 조선인이 일본인 대비 1.4∼4.6배 많이 투입된 작업으로 강조돼 있었다.
삭암은 폭파용 화약을 채우기 위해 암반에 구멍을 내는 일이고, 지주는 갱내 낙석 위험이 있는 장소에 나무를 이용해 보강하는 작업이었다. 운반은 채굴한 광석을 인력(人力)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같은 패널은 기존 기록을 근거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노동쟁의를 일으켰다", "1941년 12월 20일 한반도 출신 광부 1명 혹은 2명이 작업 도중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또 다른 패널에는 "1940년부터 1945년 종전까지 사도 광산의 한반도 출신 노동자 총수는 1천519명이었다고 기록한 문서가 있다", "1천140명분 한반도 출신 노동자에 대한 미지급 임금이 공탁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서도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조선인 강제노동과 관련해서는 '모집', '관(官) 알선', '징용'이 한반도에도 도입됐고, 일본이 한반도에 설치한 행정기관인 조선총독부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명시돼 있었다.
다만 '강제 연행', '강제 동원' 등 '강제'가 포함된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다수의 조선인이 의사에 반해 사도 광산에 왔고, 조선인 노동 조건이 가혹했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은 건 전시 시설 개설의 의미를 반감시키는 '얕은수'라는 비판을 불러올 것도 같았다.
또 전시실 공개 첫날이기는 하지만, 방문객이 많지 않다는 점도 사도 광산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물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사도 광산에서 만난 20대 여성들은 "조선인이 광산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조선인 노동자 전시가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새로 마련된 것은 몰랐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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