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예 암살에 중동 전면전 기로…러, 개전 이래 최대 규모 드론 폭격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선 올림픽이라는 지구촌 축제가 한창이지만,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는 포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10개월 가까이 진행 중인 가자전쟁은 전날 하마스 정치국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피살을 계기로 살얼음판의 확전 기로에 놓였고, 러시아는 2022년 2월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드론을 우크라이나에 퍼부었다.
파리올림픽 개막 전 '스포츠를 통한 평화 기여'라는 올림픽 정신에 맞춰 휴전을 요구했던 목소리가 무색해진 셈이다.
하마스 서열 1위 지도자 하니예가 이란 테헤란에서 암살되면서 하루 새 중동 정세는 요동쳤다.
그는 지난 29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 후 다음날 새벽 2시 숙소에서 공습을 받아 사망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푸아드 슈르크가 암살된 지 불과 6시간여만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오후 7시40분께 슈르크를 살해했다.
이란 '저항의 축' 각 세력의 핵심에 잇따라 타격이 가해진 것이다.
하마스와 이란은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천명했다.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는 이스라엘에 대해 "'저항 전선'(저항의 축), 특히 이란으로부터 가혹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자국에서 하메네이가 암살된 것과 관련,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군사 시설에 대한 드론 및 미사일 복합 공격, 예멘과 시리아 등 다른 전선에서 동시 공격 방법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하니예 암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슈르크 등을 언급하며 적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자전쟁 장기화로 휴전협상에 대한 국내외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최근 미국은 가자 휴전 협상 타결이 가까워졌다고 말해왔지만, 하마스 측 협상 대표인 하니예의 암살로 휴전 협상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선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간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그 주변 지역에 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미 CNN 방송은 러시아가 개전 후 최대 규모의 드론 공격을 개시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공격은 7시간 이상 지속됐으며, 우크라이나군은 발사된 드론 89대를 모두 격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공격은 올들어 러시아가 키이우를 상대로 감행한 가장 큰 규모이자, 이달 들어 7번째 공격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또 점령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에서 X-59 유도 미사일로 미콜라이우주를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서부에서도 별도의 공격을 강행, 이날 아침 최소 2명이 숨졌다.
이처럼 인명 피해가 잇따른 비극은 파리올림픽으로 흥겨운 장면과 대비된다.
특히 파리올림픽 개막 전 주요 7개국(G7) 등 서방을 중심으로 올림픽 기간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제안했지만, 전선은 더욱 격화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G7 정상들은 지난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모든 국가가 개별적으로나 집단으로 올림픽 휴전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올림픽 휴전' 정신을 준수하자는 취지로, 그동안 관례적으로 올림픽 개최 기간만큼은 전쟁을 중단하자는 일종의 불문율이 존재했다.
올림픽 휴전은 고대 올림피아 경기 때부터 존재했다.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휴전'을 의미하는 '에케케이리아'가 그 기원이다. 상시 전쟁에 시달리던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올림픽에 참가하거나 즐길 수 있도록 올림픽 기간만큼은 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 부활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런 불문율은 러시아에 의해 번번이 깨졌다.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에 조지아를 침공하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직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 점령한 데 이어 파리 올림픽 기간에도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작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도 올림픽 기간 도리어 초대형 악재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기로에 놓이면서, 스포츠를 매개로 문화, 국적 등 차이를 극복하고 포용과 화합을 다진다는 올림픽 정신은 빛을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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