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장악력 상실…큐텐그룹, 설립 14년 만에 '해체수순'

입력 2024-08-04 06:15  

구영배, 장악력 상실…큐텐그룹, 설립 14년 만에 '해체수순'
구 대표 "알아서 하라" 발 빼자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제갈길
핵심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서도 손절 위기…최대주주 변경 가능성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 가동…회생까지 가시밭길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한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1세대 구영배 대표가 2010년부터 다져온 큐텐그룹이 14년 만에 사실상 와해하는 수순으로 가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 여파로 구 대표의 계열사 장악력이 크게 약화한 가운데, 각 계열사가 구 대표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길을 모색하면서 재건이 쉽지 않은 상황으로 떠밀려가는 모양새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인터파크커머스는 최근 큐텐 측에서 받지 못한 미수금 등을 돌려받기 위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인터파크커머스는 큐텐이 지난해 3월 지분 교환을 통해 인수한 이커머스 업체로 인터파크쇼핑과 도서, AK몰 등을 운영한다.
인터파크커머스가 큐텐과 기술개발 계열사 큐텐테크놀러지, 큐브네트워크 등에 물린 자금은 약 650억원대로 알려졌다. 대부분 판매대금 미수금과 대여금이다.
인터파크커머스가 큐텐으로 넘어간 뒤 첫 회계 기간인 지난해 3∼12월 거둔 영업이익(342억원)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내용증명은 발송인이 수취인에게 보낸 문서의 발송일과 내용을 우체국이 증명하는 것으로, 고소·고발이나 민사소송 등 법적 싸움으로 가는 절차로 인식된다.
자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모회사에 이처럼 미수금이나 대여금에 대한 내용증명을 보내는 일은 흔치 않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인터파크커머스가 큐텐과 완전한 결별 수순으로 가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김동식 인터파크커머스 대표는 지난달 3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큐텐의 지원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며 "독자적인 매각 작업을 추진해 독립경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티몬도 대형 투자사와 투자 유치, 매각 논의를 시작했고, 위메프도 개별적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모기업 큐텐의 지원만 기다리다가는 다 함께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구 대표가 이른바 '그룹 총수'로서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구 대표는 이번 사태가 터지고 상황이 점점 악화하는데도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후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에서 판매자 이탈 도미노가 현실화하며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자 "각 계열사 대표가 알아서 사태를 수습하라"는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3사가 큐텐 없는 자구책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구 대표와 3사 대표 간 정서·심리적 거리도 멀어질 만큼 멀어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구 대표가 사내벤처 형태의 이커머스 플랫폼인 인터파크구스닥을 설립한 2000년 전후로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다. 오래 함께 일한 만큼 신뢰도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큐텐테크놀로지를 통해 재무 정보를 장악한 구 대표는 이번 사태가 터진 뒤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물론 회생 계획을 포함한 수습 방안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 대표가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티몬·위메프 사태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 언급한 티몬과 위메프 간 합병안도 양사 대표와 구체적으로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구 대표의 그룹 장악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 징후는 큐텐의 해외 자회사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큐텐의 싱가포르 기반 글로벌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는 지난달 26일 구 대표가 최고경영자(CEO)직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마크 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임명됐다고 밝혔다.

이는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 등 큐익스프레스의 재무적 투자자(FI)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티몬과 위메프 미정산 사태의 후폭풍이 그룹의 존립 기반을 흔들 만큼 거세지자 구 대표 '손절'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큐텐과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 지분 95.3%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약 1천600억원대 투자금을 넣은 주요 FI가 현재 보유한 큐익스프레스 우선주, 교환사채(EB), 전환사채(CB) 등을 보통주로 전환하면 지분율이 50% 아래로 떨어져 구 대표가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크레센도가 사채 전환권을 행사해 지분 40%를 확보,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시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통해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위시를 잇는 글로벌 단일 이커머스 플랫폼을 완성한다는 구 대표의 원대한 꿈에 종지부를 찍는 쐐기가 될 수 있다.
구심력을 상실한 큐텐그룹의 현 상황이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 절차 또는 자율 구조조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큐텐이 중심을 잡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 자회사 분리매각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기보다 자회사가 '각자도생'에 매진하는 현 상황이 시장이나 채권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가는 길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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