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국부 딸·민주투사'서 '독재자'로 퇴장한 방글라 총리

입력 2024-08-05 21:51  

'비운의 국부 딸·민주투사'서 '독재자'로 퇴장한 방글라 총리
군부와 맞선 '민주화 상징'으로 집권…女 '최장기' 22년 집권하며 경제 일으켜
野탄압·언론통제 '독재' 비난도…국민 목소리 '총칼 진압' 지시하다 레드카드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대규모 유혈 사태를 불러온 반정부 시위로 자리에서 물러난 셰이크 하시나(76) 방글라데시 총리는 암살당한 국부(國父)의 딸로 한때 방글라데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지만 장기 집권 끝에 결국 '독재자'라는 오명을 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5일(현지시간) 사임을 선언한 하시나 총리는 1947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동파키스탄으로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벵골 민족주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으로 방글라데시 '건국 아버지'로 불린다.
1975년 군부 쿠데타가 터졌고 라흐만 전 대통령과 가족은 모두 군에 의해 처형됐다. 유럽에서 유학 중이던 하시나 총리와 그의 여동생 셰이크 레하나는 참변을 피할 수 있었다.
하시나 총리는 영국과 인도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81년 고국으로 돌아와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현 집권당인 아와미연맹(AL)을 이끌며 반군부 민주화 투쟁을 벌였고 군부에 의해 여러 차례 투옥과 가택 연금을 당했다.
군부에 맞서 민주화 상징으로 떠오른 하시나 총리는 결국 1996년 선거에서 승리하며 40대 여성 총리에 올랐다.
5년간 정권을 이끈 하시나 총리는 2001년 총선에서 패하며 정권을 내줬지만, 절치부심 끝에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재집권에 성공했고, 올해 초 총선까지 4연속 승리하며 장기 집권하게 됐다.
그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총리를 지낸 시기를 포함하면 총 22년을 집권, 가장 오래 권력을 잡은 선출직 여성 지도자로 꼽힌다.장수 여성 국가 지도자로 꼽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2005∼2021년)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1979∼1990년)를 압도한다.
하시나 총리는 재임 기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세속주의를 표방하며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의류 산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육성 정책으로 경제성장률을 연 6∼7%대로 끌어올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방글라데시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천688달러(약 367만원)로 파키스탄은 물론 인도보다도 높다.
2017년에는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다며 탄압받던 로힝야족 70여만 명을 난민으로 받아들여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야당 등 정적을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권위주의적 통치로 민주주의를 저해한다며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지난 1월 총선은 불공정 선거를 주장하는 야당의 보이콧 속에 치러졌고, 투표율은 지난 총선의 절반 수준인 약 40%에 그쳤다.
하시나 총리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경제도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만큼 어려워져 민심이 크게 악화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가 불만 가득한 민심에 불을 댕겼다.
1971년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를 대상으로 공직 30%를 할당하는 정책은 2018년 대학생들 시위로 없던 일로 됐는데, 지난달 다카 고등법원이 정책 폐기 결정을 무효로 하면서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외견상 사법부가 나선 것이지만 사법부는 '정부 거수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시나 총리가 지지 세력을 위해 추진한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하며 대규모 대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하시나 총리는 시위대를 독립 전쟁 당시 파키스탄 군에 협력한 라자카르 군에 비유하면서 강경 진압을 지시했고, 약 200명이 사망했다.
이후 대법원의 '할당 규모 5%' 절충안에 시위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총리 사과 요구 등이 수용되지 않자 하시나 총리를 '독재자'로 비난하며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재개됐다.
그러나 하시나 총리는 사퇴를 거부한 채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며 강경 진압을 지시했고, 결국 또다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노동계와 문화계 등 각계가 시위에 동참했고, 특히 지난달 시위에서는 정부 편에 섰던 군이 이번에는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게 하시나 총리에게는 결정타였다.
결국 그는 군 헬기를 타고 관저를 빠져나가 해외로 피신했다.
민주화 투쟁으로 민심을 얻어 권력을 잡았던 하시나 총리가 국민 목소리를 '반국가' 또는 '테러' 행위로 규정하면서 거듭 무력 진압을 지시한 것이 결국 완전히 민심을 잃는 자충수가 됐다.


laecor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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