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권력 유지에 정보기관 충성심 중요…암살자·스파이 석방 성사"
"첩보기관 간 협상 주장해 러 FSB·미 CIA가 협상 주도"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KGB(옛 소련 첩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 사람, FSB(KGB 후신인 연방보안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달 1일(현지시간)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간에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수감자 맞교환이 이뤄진 배경을 러시아 인권운동가 올레크 오를로프(71)는 이렇게 짚었다.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혐의로 유죄를 받고 투옥 중이던 오를로프는 이번 수감자 맞교환으로 풀려났다. 그는 202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의 공동의장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7일 이번에 석방돼 독일 쾰른으로 간 오를로프와의 이런 전화 인터뷰 내용을 전하며 서방과 러시아의 수감자 맞교환에 푸틴 대통령의 KGB 이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1980년대 동독 드레스덴에서 KGB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1990년대 FSB 국장 자리에 올랐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이후 정보기관들을 권력 유지의 핵심축으로 삼아왔다.
오를로프는 푸틴 대통령에게는 정보기관 요원들의 자유를 얻어내 이들 기관에 대한 신의를 보여주는 것이 반역자로 낙인찍은 야당 인사를 석방하는 정치적 위험보다 우선시된다고 말했다.
정보기관 요원들의 충성심을 확보·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수감자 맞교환으로 풀려난 러시아인 중에는 2019년 독일 베를린에서 전 체첸 반군 지휘관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FSB 출신 바딤 크라시코프가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아르헨티나인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살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돼 징역형을 받은 러시아 스파이 부부인 아르촘 둘체프와 안나 둘체바도 이번에 석방됐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과의 수감자 교환으로 러시아인 8명이 1일 모스크바로 귀국할 때 직접 공항에 나가 이들을 환영했다.
푸틴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에 감사드린다"며 국가 표창 수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둘체프는 지난 5일 러시아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푸틴 대통령)와 SVR(러시아 대외정보국)이 우리의 석방을 위해 모든 것을 했다"고 말했다.
국영방송 기자는 돌체프와 같은 스파이들이 "조국에 봉사하는 데 평생을 바치고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른다"고 치켜세웠다.
크렘린궁 입장에서 훌륭한 스파이 활동은 적과의 거래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NYT는 설명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수감자 맞교환에 대해 "최고의 교과서에 따라 진행된 매우 어려운 체스 게임으로, 지루할 정도로 오랜 시간 지속됐다"고 말했다.
이번 맞교환 협상에 관여한 서방 당국자들은 크렘린궁이 외교 채널이 아닌 첩보기관을 통한 협상을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중앙정보국(CIA)이, 러시아에서는 FSB가 협상 파트너로 나섰다. 서방 당국자들은 FSB가 협상에서 전문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미국 대선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점도 협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수감자 교환 협상이 쉽지 않은 변덕스러운 상대가 될 수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독일 싱크탱크인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더 바우노프 선임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독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크렘린궁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수감자 맞교환의 핵심인 크라시코프를 내놓도록 독일을 설득할 수 있을 지 의문을 가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크렘린궁과 가까운 인사는 "(러시아의 생각은) 쇠가 달았을 때 두드리고 협상할 것이 있을 때 이를 성사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의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 등 미국인 3명을 포함해 모두 16명이 석방되면서 퇴임 목전에 큰 외교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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