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아성이던 실리콘밸리에 '트럼프 파도'가 친 까닭은
AI 둘러싼 트럼프와 해리스 정책 차이…갈라진 테크자본
[※편집자 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과 공존을 위한 테크의 방향성과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기류가 심상치 않다. 미국 공화당의 불모지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만만치 않은 양상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정치적 성향을 넘어 도대체 자본의 흐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태평양을 넘어 한국 경제, AI·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끼칠까.
◇ 트럼프와 해리스로 갈라선 실리콘밸리 거물들
세계 미래 경제를 주도하는 실리콘밸리는 그동안 민주당의 영원한 '텃밭'처럼 인식돼 왔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존 기술 및 서비스 체계를 뒤엎는 문화는 공화당과는 결이 달랐다. 다른 산업계에 비해 실력만 있으면 이민자, 유색인종에게도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만큼, 백인 의존적 경향인 공화당과는 간극이 있었다. 신흥 부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라,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선 사뭇 다른 흐름이 엿보인다. 트럼프로 기운 실리콘밸리, 테크업계의 거물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다.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과 역시 페이팔의 전 최고운영책임자(COO) 데이비드 색스, 벤처업계 거물 투자자인 마크 안드레센 등도 잇따라 트럼프 당선을 지지했다. 데이비드 색스는 공화당 전당대회 연단에 올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깎아내리며 트럼프를 지원 사격하기도 했다.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가 피터 틸의 벤처캐피탈에 근무한 점도 '페이팔 마피아'들의 트럼프 지지 물결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지지 효과는 인적 영향력에 그치지 않는다. 금전적으로도 트럼프 캠프에 힘이 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가 트럼프 측에 매달 내는 기부금이 4천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실리콘밸리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은 반격에 나섰다. 실리콘밸리에 트럼프 지지세가 퍼지지 않도록 세를 규합하는 모습이다. 링크드인 공동창업자 겸 투자자인 리드 호프먼을 비롯해 200여명은 최근 해리스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벤처캐피털 코슬라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 창업자와 가상화폐 투자자 마크 큐번 등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양측으로 갈린 거물들은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대선은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 사이도 갈라놓았다. 데이비드 색슨은 같은 페이팔 출신으로 해리스 지지자인 리드 호프먼 전 페이팔 부사장이 트럼프의 피격을 소원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러자 호프먼은 색슨을 겨냥해 "유죄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를 지지한다고 질타했다.
◇ 'AI 규제' 둘러싼 이해관계…AI 규제 강조한 해리스
양측으로 갈린 게 단순히 정치적 성향 탓만이 아니다. 경제적 측면이 짙게 깔려있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과 탄소중립을 둘러싼 산업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다.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규제'다. 특히 테크기업과 AI를 둘러싼 규제는 정치적 분화의 단초다.
그동안 빅테크들은 AI의 안정성을 뒤로한 채 인프라 투자와 서비스화에 달려드는 경향이었다. 지난해 말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에서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내쫓으려다 실패로 끝난 쿠데타는 '규제파'에 대한 '수익파'의 승리였다.
이 같은 테크자본의 경향성과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삐걱대는 측면이 있다. 지난해 10월 바이든 행정부는 AI 규제 방안이 담긴 행정명령을 내놓았다. AI 안전 실험 결과와 관련 기술 정보 등을 미국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AI 부작용 방지와 안전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정책이었다.
독점에 대한 규제도 바이든 행정부 들어 강해졌다.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구글과 애플 등 빅테크의 반독점 행위에 이전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구글이 지난 5일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서 패소한 건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테크분야 기업들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는 정책 방향이다. 특히 AI 행정명령을 주도한 이가 해리스다.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해리스는 AI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적인 공조를 주문하기도 했다.
◇ 규제완화 공언한 트럼프…테크자본과 유착하나
반면, 트럼프는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고 있다. 규제의 빗장을 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트럼프 당선 시 중국에 대한 AI 관련 산업도 규제도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나아가 대통령 재임 시절 가상화폐를 '사기'로 규정했던 트럼프가 가상화폐를 '육성'하겠다고 밝히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일시적으로 반등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언급해 온 점도 테슬라에는 별다른 타격이 아닐 수 있다. 이미 생산공정 효율화 등을 통한 가격경쟁력을 갖춰가는 테슬라로서는 보조금이 없을 경우 전기차 후발 주자인 독일기업 등과의 경쟁에서 더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테슬라는 이미 AI·로봇 기업으로의 청사진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AI 규제 완화를 더욱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당선은 머스크가 창업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에도 상당한 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스페이스X의 주요 사업 발주처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머스크가 트럼프를 지지할 만한 이유가 된다.
트럼프의 이런 정책이 우리 기업들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미국 현지 생산기지 건설에 대한 압박이 바이든 행정부 때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공들여 추진한 정책인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이 폐지 또는 축소될 경우, 이에 주파수를 맞춰온 한국의 반도체와 전기차 관련업계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 트럼프든 해리스든, 첨단산업 '미국 중심주의'에선 일맥상통
앞에서 트럼프와 해리스 간의 차이점을 다뤘지만, 두 후보가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일자 '해리스와 트럼프의 테크정책은 꽤 비슷해 보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양자 모두 첨단기술과 관련 생산능력에 대한 투자를 지지하고, 유럽연합(EU)의 관련 규제를 반대한다고 공통점을 찾았다.
또한 두 후보가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데이터 수집부터 AI의 군사적 이용에 경계를 두지 않을 것으로 바라봤다. 사실상 자국 내 논리로 세부적인 정책 차이가 있을 뿐, 큰 틀에선 유사하다는 평가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 다가올 AI 시대의 패권을 미국이 쥐고 가겠다는 전략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 오는 10일 9시30분 연합뉴스TV '탐사보도 뉴스프리즘'(진행 이광빈)에서도 관련 내용을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전문 매체 더밀크의 손재권 대표가 출연해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상황과 한국 경제 영향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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