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합의 당시 외무장관·차관 나란히 외교라인 요직에 임명
이스라엘, 핵협상 원천봉쇄하려 하니예 암살설 '솔솔'
이란 새 정부, 이스라엘 보복 동시에 서방과 협상 과제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서방과 이란의 역사적 외교성과였던 2015년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성사한 이란 외교라인의 주역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서방과 핵협상 재개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핵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외교 진용을 갖추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압바스 아락치 전 외무차관을 새 외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락치 후보자는 하산 로하니 정부(2013∼2021년)가 출범한 2013년 국제문제·법률 담당 차관으로 임명돼 핵합의 실무 협상을 맡았고 핵합의가 타결된 2015년부터 핵합의 이행 점검위원회 이란 측 대표를 맡았다.
로하니 정부에서 핵합의를 현장에서 총괄했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당시 외무장관과 함께 서방과 핵협상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앞서 2일 자리프 전 장관을 전략담당 부통령으로 임명했다.
서방과 핵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이란의 '수석, 부수석 대표'를 한단계 직급을 더 올려 복귀시킨 셈이다.
이란의 내각 구성에서 국방·안보 분야는 전적으로 최고지도자와 군부의 결정에 따르지만 외교 분야는 최고지도자가 대통령에게 재량권을 제한적으로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자리프와 아락치의 복귀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페제시키안 대통령에게 서방과의 접촉을 어느 정도 '용인'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달 대선에서 개혁·온건파로 분류되는 페제시키안의 예상 밖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표출된 이란의 비판적 민심에 최고지도자가 일단 부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내 기득권인 강경파와 군부의 반대를 넘어서야겠지만 아락치의 외무장관 후보자 지명을 신호로 페제시키안 정부는 서방과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취임식에서도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세계 주요 강대국과 협상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31일 이란 테헤란에서 발생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암살을 이런 이란 내부의 변화와 연결짓는 해석도 나온다.
온건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핵협상 가능성이 커지자 이스라엘이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위험성이 큰 '초대형 돌발 악재'를 터트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2013년부터 시작된 서방과 이란의 핵협상 국면에서도 이를 강경하게 반대하며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하니예 암살의 직접적 원인은 가자지구 전쟁이지만 이란 수도에서 요인을 암살함으로써 페제시키안 정부는 계획했던 대서방 대화 노선을 추진하는 데 초장부터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도 사실이다.
예상치 못했던 사태에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해 공언한 '보복'과 서방과 핵협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란 정부가 전면전 수준의 보복을 피하는 대신 이를 지렛대 삼아 서방과 핵협상에서 강한 요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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