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사설서 "학살 기록 존재…사실 인정하고 희생자 실태 밝혀야"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경수현 특파원 =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 학살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도쿄도를 향해 아사히신문이 30일 "역사적 사실의 묵살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진보 성향 유력 일간지인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8년째 별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와 조선인 학살 기록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가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간토대지진은 일본 수도권이 있는 간토 지방에서 1923년 9월 1일 일어났다. 지진으로 10만여 명이 사망하고 200만여 명이 집을 잃었다.
일본 정부는 당시 계엄령을 선포했고 일본 사회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방화한다' 같은 유언비어가 유포됐다. 이러한 헛소문으로 약 6천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살해됐다.
아사히는 유언비어를 믿은 시민과 군·경찰이 많은 조선인을 죽였다는 사실은 당시 작성된 보고서와 체험자 수기 등에 남아 있으며, 학살 배경에는 조선인에 대한 경계심과 잠재적 차별 감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간토대지진 당시 희생된 이들을 뭉뚱그려 애도하고 있는 고이케 지사에 대해 "학살과 재해는 다르다"며 "고이케 지사 태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묵살하는 학살 부정론과 통한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고이케 지사가 2016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문에서 "불행한 사건을 두 번 반복하지 않고 누구나 안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세대를 뛰어넘어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던 것이 당연한 역사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고이케 지사는 그러나 이듬해인 2017년부터는 조선인 학살 희생지를 위한 추도문을 송부하지 않고 있다.
아사히는 일본 정부가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간토 계엄사령부 상보', '도쿄 백년사' 등 학살 기록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불확실함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학살 자체를 유야무야하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실을 인정하고 유언비어에 의한 살상이 왜 일어났는지 조사해 조선인을 포함한 외국인 희생자 실태를 밝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사히는 "사실과 마주하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계속 결의하는 것의 중요함은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이날도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고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에 여전히 '모르쇠'로 임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사히신문 기자로부터 정부 입장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앞두고도 마찬가지 답변을 하면서 반성이나 교훈과 같은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취재보조:김지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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