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75억원 부정 축재 혐의로 기소"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레바논 경제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지목받아온 리아드 살라메흐(73) 전 중앙은행 총재가 구금됐다고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말 하자르 레바논 검찰총장은 살라메흐 전 총재가 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구금됐다고 밝혔다.
변호인인 하페즈 자쿠르는 레바논과 해외에서 부패 혐의를 받아온 살라메흐 전 총재가 용의자 신분이 아닌 증인 신분으로 당국의 소환에 응했다면서, 구금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쿠르 변호사는 "의뢰인은 증인이었다. 왜 그가 구금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헨리 코우리 레바논 법무부 장관은 살라메흐 전 총재가 다시 조사받기 전 나흘간 구금될 것이라면서, 재조사 결과에 따라 감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살라메흐는 레바논 중앙은행 총재직을 30년 동안 유지하면서 한때 장기 내전(1975∼1990년) 이후 레바논의 경제 회복에 기여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재임 기간 공공기금을 이용한 부정 축재 등 재임 중에 벌어진 여러 건의 금융 범죄 혐의로 레바논과 유럽 국가에서 수사선상에 오른 끝에 지난해 7월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복수의 법조계 소식통은 그가 금융 범죄를 통해 1억1천만달러(약 1천475억원)를 축재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로이터 통신에 전했다.
한 소식통은 당국이 살라메흐 전 총재를 구금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2015∼2018년 중앙은행과 금융회사인 '옵티멈 인베스트' 간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수수료 관련 횡령, 돈세탁, 사기 등이라고 설명했다.
살라메흐 전 총재는 그동안 이런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또 그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체포 영장이 발부되고 인터폴의 적색 수배 대상에도 올랐지만, 단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다.
레바논 당국이 살라메흐 전 총재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고위 관리들이 좀체 처벌받지 않는 레바논에서 보기 드문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은 장기 내전을 마무리하면서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한 합의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독특한 권력분점 체재를 도입했다.
이런 종파 간 권력분점 시스템은 정치권 및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낳았고 결국 중동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국가인 레바논을 위기로 몰아갔다.
2019년 본격화한 레바논 경제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 2020년 베이루트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면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현지 화폐인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98% 이상 폭락했고 극심한 외환 위기 속에 무역도 위축되면서 은행에 맡겨둔 예금마저 인출할 수 없게 된 주민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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