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구팀 "고대 주민 게놈 분석…1860년까지 인구 계속 증가"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거대한 모아이(Moai) 석상으로 유명한 칠레 라파 누이(이스터섬)에서 과거 주민들이 자연을 과도하게 파괴해 인구가 급감했다는 학설을 부정하는 유전자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J. 빅토르 모레노-마야르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11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서 지난 500년 동안 라파 누이에 살았던 주민 15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17세기에 인구 붕괴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스터섬으로 불리는 라파 누이는 남아메리카에서 서쪽으로 3천700㎞, 가장 가까운 사람이 거주하는 태평양 섬에서 동쪽으로 1천900㎞ 이상 떨어진 세계에서 가장 외딴곳에 있는 섬 중 하나다.
연구팀은 라파 누이에 대해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1600년대 인구 급증과 자원 과잉 개발로 인한 '생태학적 자살'(ecocide)로 인구가 급감했는지, 라파 누이의 폴리네시아 조상들이 1722년 유럽인들과 접촉하기 전 아메리카 원주민과 교류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현재 프랑스 파리 인류 박물관(Musee de l'Homme)에 보관된, 1670~1950년 라파 누이에 살았던 주민 15명의 유골에서 표본을 채취해 게놈을 분석했다.
그 결과 17세기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사건이 있었을 경우 게놈에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유전적 병목 현상 증거는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동 연구자인 스위스 로잔대 바르바라 수사 다 모타 박사는 "유전자 분석 결과 13세기부터 페루 노예 사냥꾼 습격으로 섬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진 1860년까지 섬 인구가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생태학적 자살로 인구가 급감했다는 학설과는 직접적으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게놈 분석에서는 또 현재 라파 누이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섬 주민들도 게놈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DNA를 10%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섬 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접촉이 1250~1430년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이는 유럽인들이 라파 누이에 도착하기 훨씬 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훨씬 전 폴리네시아인들이 태평양을 건너 라파 누이에 왔음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모레노-마야르 교수는 "이스터섬 주민의 '생태학적 자살' 개념은 원시인들이 문화나 자원을 관리하지 못해 스스로 멸망했다는 식민지 시대 서사의 일부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그 반대 결과를 보여주는 유전학적 증거 덕분에 이제 그런 생각은 접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출처 : Nature, J. Victor Moreno-Mayar et al., 'Ancient Rapanui genomes reveal resilience and pre-European contact with the America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881-4
scite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