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중 학살로 징역 25년형 받아…페루 검찰 "사망자 최소 25명"
일본계 이민자 가정 출신, 2000년 일본 도피 후 '대통령 사임서' 팩스 제출하기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반인륜적 범죄로 실형을 받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이 수도 리마에서 사망했다고 페루 일간 엘코메르시오와 AP통신이 유족의 말을 인용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86세.
그의 딸이자 페루 야당(민중권력당·FP) 대표인 케이코 후지모리는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제 아버지가 오랜 암투병 끝에 소천했다"며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적었다.
1938년 일본계 이민자 출신 가정에서 태어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수학과 교수와 대학 총장을 지냈다. 1990년 페루 출신 유명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2010년 노벨 문학상 수상)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임기 초반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국영 산업 민영화를 통한 경제 안정화와 게릴라 축출을 위한 일련의 과감한 치안 정책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3선 연임에 성공한 2000년, 자신의 재임 중 페루에서 자행된 각종 학살·납치 등 각종 범죄와 비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명예스럽게 권좌에서 물러났다.
후지모리는 당시 일본으로 도피한 상태에서 팩스로 사임서를 제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2005년 재기를 위해 칠레로 입국했다가 가택 연금됐고, 2007년 페루로 범죄인 인도된 뒤 2009년 징역 25년 형을 받았다. 이 형량은 이듬해인 2010년 페루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 범죄와 관련한 사망자는 최소 25명이라고 페루 검찰은 적시했다.
그로부터 8년여 뒤인 2017년 12월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당시 대통령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이는 탄핵 위기에 몰렸던 쿠친스키 전 대통령의 자진 사임으로 이어지는 '탄핵 반대표 매수 파문'을 낳기도 했다.
페루 법원은 이후 2018년 10월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취소했지만, 헌재는 다시 2022년 3월 사면 결정을 되살리라고 결정했다.
당시 페루 정부는 그러나 미주기구(OAS) 산하 미주인권재판소 판결에 근거해 그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고령에 병까지 얻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비롯한 법정 투쟁 끝에 결국 지난해 12월 석방됐다. 그는 호흡기·신경계 질환에 더해 설암으로 몇 차례 수술을 받기도 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스페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약 27만명의 여성 원주민을 상대로 가족계획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불임 수술을 자행한 것으로도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집권 기간 의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정적'을 불법으로 사찰한 혐의도 받았다.
AP는 "케이코 대표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2026년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계획이 있었다고 언급한 적 있다"며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휠체어를 타고 개인 병원을 떠나는 게 마지막 공개 활동이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준비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 "두고 봅시다"라고 답했다고 엘코메르시오는 전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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