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트럼프 당선시 러브레터 보낼것…누가 돼도 경제안보·한미일 협력은 유지"
"중동·우크라에 북한 문제, 후순위로 밀려"…'北핵실험해도 관심 시들, 면책 여지' 관측도
"IRA 폐기 시나리오는 희박"…해리스든 트럼프든 보호무역주의 강화 전망
워싱턴 싱크탱크 전문가들 '포스트 美 대선' 한반도 영향 진단
(워싱턴=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미 정부는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동서센터의 한미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의 하나로 CSIS 회의실에서 만난 차 석좌는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미 정부의 입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속에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무기 감축 등에 초점을 맞춰 군비통제 협상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워싱턴 안팎에서 고개를 드는 등 비핵화 목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와중에 나온 언급이다.
최근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북한에 대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규정, 협상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언급해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파장이 일었다. 지난 3월에는 백악관 당국자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기존 정책 목표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 과정에서 '중간 조치'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차 석좌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언제든 무엇에 대해서든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대화가 이뤄진다면 구체적 소재는 다를지라도 모든 것은 비핵화라는 목표 하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는 이는 북한 문제가 아니라 넓은 문맥에서 봐야 한다"며 이란, 핵확산금지조약(NPT) 등을 둘러싼 외교 기조에 있어 난감해질 수 있으므로 미국의 목표는 항상 비핵화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동석한 엘런 김 CSIS 선임연구원은 백악관 관계자가 중간조치를 언급했던 배경에 대해 "당시 남북간 긴장이 너무 높았서 이를 낮출 필요가 있던 시기"였다며 "미국으로선 중간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취지였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연구원은 "일단 긴장을 낮추자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으로, 미국의 정책이 아예 바뀐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비핵화라는 목표는 항상 그대로이고 방향도 동일하지만, 위협 축소나 군비 통제와 같은 취지에서 중간단계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미 민주당과 공화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각 내놓은 당 강령(정강)에 '한반도 비핵화'가 담기진 않은 점에 대해서도 차기 정부의 기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풀이했다.
김 연구원은 "국내 정치용이다 보니 굳이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며 "특히 민주당으로선 바이든 대통령 사퇴 후 시간 여유가 너무 없었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른 측면에선 전략적 측면에서 굳이 '비핵화'라는 용어를 써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여지를 남겨놓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북한은 지난달 13일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공개한 바 있다. 국가정보원은 미 대선 이후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개연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차 석좌는 "북한 핵탄두가 얼마나 진화했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북한은 무기 프로그램 관련 목표를 세우면 수많은 제재에도 달성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이지, (북한은) 지금도 핵개발을 계속하며 완벽을 기하려 하고 있을 것"이라며 7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북한과 러시아간 밀착으로 인해 북한 핵 동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더욱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북한의 도움에 대한 대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전수 등 어떤 형태로든 뭔가를 주고 있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북·러 관계가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미 대선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4일, 시선은 차기 정부의 한반도 정책으로 쏠린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상당부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반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집권 1기에 그랬던 것처럼 톱다운 방식의 북미 정상외교가 재개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차 석좌는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공급망 문제를 포함한 경제안보 측면, 한·미·일 3자 협력관계에 있어서는 지금과 비슷한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설 경우엔 과거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말폭탄'을 주고받던 단계는 생략하고 바로 '러브레터'를 주고받으며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7년 '로켓맨', '늙다리' 등 막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이듬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정상회담을 열었다. 차 석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김 위원장은 바로 '아름다운 편지'를 쓸 것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좋아할 것"이라며 "이들이 다시 만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선 "정상회담은 (다른 외교 회담과 달리) 실패해버리면 대안이 없다. 최종 단계에서 실패하다보니 이후 5년간 대화가 단절됐고, 북한은 핵을 가속화했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시 북미간 외교 재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과거와 조건이 달라졌다고 단서를 달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러간 밀착이 강화됐고, 국제 제재는 전보다 약해졌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감싸기로 새 제재를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사이 북한 핵프로그램은 굉장히 발전했다.
김 연구원은 "북한 지도자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말 매력적인 제안을 가져오지 않는 이상 굳이 대화할 필요가 있나 싶을 수도 있다"며 "아니면 우크라전이 끝날 경우 북러 협력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북과 대화에 나선다면 한국과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한국 내부에서도 핵무장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현재 한반도 문제는 대선에 가자전쟁, 우크라전까지 겹친 미 정가에서 후순위라는 게 미 한반도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언이다.
차 석좌는 북한이 ICBM 이동식발사대를 공개해도 미 언론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게 사실이라며, 그 사이 북은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서센터 워싱턴DC 지부에서 만난 니콜라스 헤미세비츠 프로그램 매니저도 "남북, 북미 직접 대화가 없다보니 미디어 노출이 줄고 미국인들도 한반도 문제에 덜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방문, 미 대선을 보는 이들 국가들의 시각을 연구했다는 그는 특히 한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한국을 빼놓고 중국, 북한과 대화하고 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소개했다.
차기 미 대통령이 누가되든 우크라전의 우선순위가 높아지면서 인도·태평양에 대한 관심이 옮겨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전문가는 이렇게 관심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오히려 국제사회의 반응은 제한적일 수 있으며, 북한엔 슬며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 만난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은 지난 몇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에 중요한 전략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엄 연구원은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해 더이상 미국과 대화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별도의 조건없이 대화하자는 입장을 보여도 북한은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에 있어 평화통일 기조가 사라졌고, 북한은 러시아와 관계를 더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그는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북한은 도발 수위를 높이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다며 북미간, 남북간 대화를 촉구했다.
경제안보의 중요성과 맞물려 통상정책의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같은날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만난 제프리 숏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시 관세 공약이 현실화한다면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방국들과의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또 한국 등 특정 국가를 겨냥하기 보다는 철강 등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보호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엔 현 정부의 정책을 수정하는 데 있어 한국, 일본과 같은 우방국과 협력, 조율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조선산업, 기후변화 대응 분야와 관련해 협력이 늘고 양국 경제관계는 상당히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통상교섭본부장 출신 여한구 PIIE 선임위원은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미국이 예전과 같은 자유롭고 열린 무역 환경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정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IRA가 이미 법으로 제정된 만큼 "폐기는 굉장히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잘라 말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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