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美 최대경합주 표심 어디로…베테랑 지역기자도 "정말 헷갈린다"

입력 2024-10-04 07:00  

[르포] 美 최대경합주 표심 어디로…베테랑 지역기자도 "정말 헷갈린다"
한집 앞 해리스·트럼프 팻말이 나란히…승패 열쇠 쥔 펜실베이니아를 가다
"'주요도시' 피츠버그·필라델피아 사이 T존 보수 성향 '앨라배마주'"
해리스 프래킹 입장변화엔 의구심…"트럼프 성격 싫어도, 기업인은 사업 우선"
중도층 늘고 예측 더 어려워져…TV·유튜브선 정치광고 봇물, 젊은층 사이선 투표 회의론도


(피츠버그[미 펜실베이니아주]=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두 세대가 함께 거주한다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하이랜드 파크의 한 주택. 계단을 기준으로 오른쪽엔 '트럼프 2024', 왼쪽엔 '해리스·월즈 2024'라고 쓴 팻말이 서 있다. 11월5일 치러지는 미 대선에서 각각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대에서 만난 박사과정 유학생 배재훈·권정은씨 부부는 기자에게 이 한장의 사진으로 미 '최대 경합주'로 불리는 펜실베이니아주의 풍경을 요약해 보여줬다. 대선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 곳 승패의 열쇠를 쥔 이 곳 펜실베이니아주의 표심은 여전히 안갯속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다.
미 대선은 각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주 인구에 따라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자독식 구조다. 펜실베이니아는 경합주 중에서 가장 많은 선거인단(19명)이 배정된 곳이어서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미 기업연구소(AEI) 존 포티에 선임연구원은 초접전인 이번 대선에 대해 "경합주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곳 하나만 꼽자면 펜실베이니아"라고 말했다. 어느 후보가 됐든 승리하려면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 모두 시간과 돈을 펜실베이니아에 가장 많이 쏟아붓는 이유 이기도 하다. TV와 유튜브에서 채널과 관계없이 선거 광고가 끊이지 않는다. 선거 광고로 도배가 되는 통에 일부 주민들은 '지겹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과거 민주당 성향이 강했던 이곳은 2016년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로서는 30년 만에 승리했다. 2020년엔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했다. 득표율 차는 각각 0.72%, 1.17%에 불과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안에서도 카운티별로 워낙에 특성이 각기 다른 탓에 이번에도 승기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한미언론진흥재단과 미국 하와이에 위치한 싱크탱크 동서센터(East-West Center)의 한미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피츠버그시에서 만난 지역언론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의 도널드 길리랜드 뉴스·탐사보도 에디터는 이번 대선에 대해 "정말 복잡하고 헷갈리는 선거"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약 30년 기자경력의 대부분을 정치부에서 보냈다는 그는 "2016년 대선 결과 펜실베이니아주의 전통적인 정치적 지형이 더이상 적용되지 않으며, 아주 근소한 차이로 접전이 일어난다는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길리랜드 에디터는 1992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 책임자였던 제임스 카빌의 말을 빌어 펜실베이니아주의 정치 지형을 설명했다.
카빌은 "펜실베이니아 동쪽엔 필라델피아, 서쪽엔 피츠버그, 가운데엔 '앨라배마'가 있다"고 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주요 도시인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는 전통적으로 진보적이고 민주당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간주된다. 이를 제외한 중부 지역은 대부분 인구가 희박한 농촌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종교적이고 공화당 성향이 강하며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주민이 많다. 카빌은 이런 보수적 특징을 미 남부의 보수 성향이 강한 앨라배마에 빗댄 것이다.
카빌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피츠버그시가 속한 앨리게니 카운티 정부에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애비게일 가드너는 오늘날 펜실베이니아주 정치 지형을 설명하면서 'T(티)'를 그렸다. T존에 위치한 농촌 지역은 상대적으로 공화당 성향이 강하지만, 인구가 많은 나머지 도시 지역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곳들이다.
필라델피아시와 그 교외를 포함한 필라델피아·몽고메리·델라웨어 카운티 등, 펜실베이니아주립대가 위치한 블레어 카운티, 해리스버그시가 속한 다우닝 카운티, 뉴욕 출퇴근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먼로 카운티 등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곳으로 꼽힌다.
펜실베이니아주 각각 북서쪽, 북동부에 자리한 이리 카운티와 노샘프턴 카운티는 2016년 대선에선 공화당에, 2020년엔 민주당에 각각 표를 줬다. 과거 석탄, 철강, 조선 등 제조업으로 유명했던 이곳은 지금은 '러스트벨트'(rust belt·미국 오대호 연안의 쇠락한 공업지대)에 속한다. 정치적으로는 인구는 적지만 주 전체 표심의 바로미터, 이른바 '벨웨더(bellwether·지표) 카운티'로 불리는 곳들이다.

길리랜드 에디터는 "유권자 등록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빨갛게(공화당 성향이 강한 쪽으로) 변하고 있다"며 "다만 실제 투표장에 얼마나 갈지 알수 없고, 계속해서 바뀌는 지역들도 있어 예측은 전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는 피츠버그 주변에 그치지 않고 각 카운티에 고루 기자들을 최대한 많이 보내 유권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고자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에도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트럼프는 과거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라 여기면서도 '민주당이 더는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중도파에게 다가갔다"며 "특히 노조의 경우엔 경제적으론 진보적이지만 성소수자 권리 등 사회적 문제에선 민주당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공화당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년 전 약 60만명 수준이었던 펜실베이니아주 내 민주당과 공화당 등록 유권자 차이는 이제 약 3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상당수는 무당파로 넘어간 것으로 그는 분석했다.
기자가 만난 주민들은 각각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보였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많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수압 파쇄법(fracking·프래킹)은 특히 중요한 현안이다. 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환경오염 우려 등으로 인해 논란이 이어지는 문제다. 해리스 부통령은 2020년 대선 경선 당시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프래킹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최근 철회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제조업 기업협회(Manufacturer&Business Association)의 제즈리 프렌드 부회장은 프래킹 관련 입장을 바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프렌드 부회장은 "특히 펜실베이니아 서쪽 지역은 천연가스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10만명이 넘고 연관 산업까지 합하면 막대한 인원이 종사한다"며 "과거 반대 목소리를 내다가 대선 후보가 되고 태도를 바꾸니 사람들이 믿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길리랜드 에디터 역시 "프래킹이 이뤄지는 지역은 거의 레드(공화당 우세) 지역이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과거 자신의 발언을 부인한 것이 무당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노조 입장에선 해리스 부통령이 지나치게 간단히만 언급한 것에 대해 '실제로 프래킹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남아있다"며 "그러나 정치적 수사에 능숙하지 않은 해리스 부통령으로선 새 지지층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 미지수여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길리랜드 에디터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 지역 노조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고 그 결과 특히 피츠버그에서 노조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며 그러나 해리스 부통령은 특별히 이 지역 노조와 쌓은 접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거론할 만한 이력은 바이든 정부의 부통령이라는 점"이라며 "해리스 부통령으로선 이 지역 노조를 화나게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프렌드 부회장은 초당적 성격의 제조협회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대체로 바이든·해리스 정부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바이든 정부가 성과로 내세우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한 제조업 활성화 여부에 대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규제 측면에서 부담이 늘었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선 "2017년 세제 혜택으로 기업인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며 "아무리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격이 별로라 해도 기업가 입장에선 감정이 아니라 사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기업 친화적인 후보로 기울게 된다"고 말했다.
피츠버그대 학생 크리스 크래머(26)씨는 기후변화, 낙태권, 학자금 대출 탕감 등의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다만 그는 "두 후보다 별로인 것 같고 당의 가치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젊은층에선 투표가 과연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noma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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