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ECJ 판결 근거로 "안전국가 출신자 역외 구금은 부당" 판결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 정부가 불법 이주민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비(非)유럽연합(EU) 국가인 알바니아에 개소한 이주민 센터가 가동 일주일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이주민 문제를 전담하는 로마 특별법원은 18일(현지시간) 알바니아 이주민 센터로 이송된 12명에 대한 구금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고 안사(ANSA), AFP 통신이 보도했다.
법원은 이들의 출신 국가인 방글라데시와 이집트가 '안전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같이 판결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6일 처음으로 이주민들을 알바니아로 이송했다. 총 16명이 이탈리아 해군 함정을 타고 알바니아 서북부 셴진 항구에 있는 이주민 센터에 입소했다.
이중 4명이 신체검사 후 미성년자, 취약자로 밝혀져 이탈리아로 돌아온 가운데 남은 12명도 이번 판결에 따라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됐다. 이주민 센터가 텅텅 비는 셈이다.
안전 국가는 송환되더라도 해당 국가 정부의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없는 국가를 말한다.
이탈리아와 알바니아는 지난해 11월 알바니아 셴진 항구와 인근 자더르 지역에 이탈리아 이주민 수용 센터 2곳을 건설하고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불법 이주민들을 5년간 관리, 억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자국 해역에서 구조한 이주민 가운데 안전 국가 출신만 알바니아로 보낼 수 있다.
이탈리아가 선정한 안전 국가 22개국 목록에 방글라데시, 이집트는 포함되지만, 최근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지역 일부가 아닌 국가 전체가 안전할 경우에만 안전 국가로 지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로마 특별법원은 ECJ의 판결을 근거로 방글라데시와 이집트를 '안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들을 구금하는 것은 이탈리아-알바니아 협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불법 이주민 문제를 제3국에 하청을 줘서 처리하고자 했던 이탈리아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평가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해 11월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와 이주민 협정을 체결하고 알바니아 이주민 센터에서 연간 3만6천명의 망명 신청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알바니아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이탈리아 법원의 판사에게 화상으로 망명 신청 이유 등을 설명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주민 센터에서 대기하게 된다. 망명 신청이 거부되면 알바니아에서 곧바로 본국으로 송환된다.
망명 신청이 거부되고도 EU를 떠나지 않는 불법 이주민들을 차단하기 위한 방책으로 사실상의 '추방 대책'인 셈이다.
멜로니 총리는 '알바니아 모델'을 수년간 EU를 괴롭혀온 불법 이주민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EU 내부에서도 이탈리아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이번 법원의 판결로 인해 좌초 위기에 빠졌다.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은 이번 판결에 대해 "판사들이 정치화됐다"고 비난하며 "우리는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마테오 피안테도시 내무장관은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야당은 정부 계획이 실패했다며 멜로니 총리가 재정 낭비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요르단, 레바논을 방문한 멜로니 총리는 오는 21일 내각 회의를 소집해 법원 결정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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