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벨의 나라 스웨덴 언어로 한강 번역한 칼손·박옥경 부부

입력 2024-10-20 07:30  

[인터뷰] 노벨의 나라 스웨덴 언어로 한강 번역한 칼손·박옥경 부부
"한강 수상, 하루아침 벌어진 일 아냐…스웨덴 반응 대단"
한강 온 행사에 1천명 몰리고 '채식주의자' 연극은 왕립극장 올라
"'작별하지 않는다, 노벨상에 결정적'이라 들어…한단계 높은 작품 평가"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한강 작가가 수년 내로 노벨상을 받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게 올해일지는 몰라서 놀랐어요. 며칠 잠 못 이룰 만큼 기뻤고 번역 초창기가 생각나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 언어로 한강의 소설 두 편을 공동 번역한 안데르스 칼손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한국학 교수와 박옥경 번역가 부부는 한강의 수상을 예상했을 정도로 스웨덴에서는 이미 엄청난 호응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18일(현지시간) 런던 주영한국문화원에서 만난 칼손 교수는 "작품의 질뿐 아니라 스웨덴에서 한강의 위치를 볼 때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며 "문학계에서 평론가들의 평가가 좋고 일반 독자들, 특히 젊은 층이 한강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올해 3월 '작별하지 않는다' 스웨덴 출간을 기념해 한강이 참석한 우메오 국제문학축제 대담 행사엔 1천명이 몰려 저자 사인에만 1시간 넘게 걸렸다고 한다. 지난해엔 '채식주의자'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 스웨덴 왕립극장 대형 무대에 올랐다.
이들이 한국 작품들을 스웨덴어로 번역하기 시작한 1990년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다.
스톡홀름대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던 칼손 교수와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박 번역가는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국 책이 거의 없다는 안타까움에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번역 작품을 들고 현지 출판사 문을 두드렸을 때 "내용은 좋은데 출간은 어렵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서며 분위기는 달라졌다. 출판사에서 먼저 번역을 의뢰하거나 출판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요청해 오는 일이 점점 늘었다.
박 번역가는 "2019년 스웨덴 주요 문학잡지가 한국 작가 특집을 실은 적이 있고 요즘엔 출판사에서 한국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보인다"며 "노벨상 수상이 어디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토양이 점점 쌓여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칼손 교수 역시 "한국 문학이 이제 정말로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번역한 한강의 소설은 '작별하지 않는다', '흰'이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영문 번역본을 스웨덴어로 옮긴 중역본으로 출간됐다. 총 4권으로 한강은 한국 소설가로선 스웨덴에 가장 많은 작품이 소개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1786년 스웨덴어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며 스웨덴어에 최고 권위를 인정받은 전문가들이 종신 위원이 된다.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작품이 출간된 작가들이 노벨상을 받지만, 스웨덴어 번역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두 번역가는 한강의 수상에 '작별하지 않는다'가 결정적이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문학적 완성도 측면에서 한강의 작품 세계가 한 단계 더 높아지고 확장됐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칼손 교수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 한강 작품들은 인간으로서 트라우마와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어떻게 잊지 않으려 하는지 다룬다"며 "스웨덴 독자들도 이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이며 설득력 있게 서술된다는 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상대 언어를 심도 있게 공부한 한국인-스웨덴인 부부는 번역가로서 최상의 조합이라 할 만하다.
칼손 교수는 "어떤 단어, 문장 구조가 좋을지, 어떻게 하면 스웨덴 독자가 문화적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지 디테일까지 논의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전혀 다른 두 언어를 연결하는 일이기에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많다.
두 번역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목을 정할 때 '헤어지다', '이별'과 다른 '작별'이라는 낱말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스웨덴어 단어를 골랐다. 스웨덴어로는 원제에 없는 주어가 필요하기에 오래 고민하고 한강과도 직접 의논해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Jag tar inte farval)를 제목으로 정했다.
번역이 불가능한 부분은 어떻게 하는지 질문엔 제주가 배경인 이 작품 속 '삼촌'을 예로 들었다. 남녀 구분 없는 제주 지역 특유의 호칭인 만큼 해결책은 '삼촌'을 원어 그대로 살려두는 것이었다고 한다.

번역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에 칼손 교수는 "문학 작품이 있고 다른 언어를 쓰는 독자가 있으므로 그 매체(medium)"라고 간단명료한 답을 내놨다.
박 번역가는 "어색하게 읽히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한 원작자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번역가는 현재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를 번역 중이다. 한강의 노벨상을 계기로 더 다양한 한국 작품을 세계에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향후 목표와 꿈에 대해서 박 번역가는 "한국의 좋은 작가들을 스웨덴 독자들에게 꾸준히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칼손 교수는 "한국이 일본 또는 중국과 연결해 거론되는 게 아니라 한국 그 자체로 관심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한국학자로서 바람을 강조했다.
chero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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