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슈퍼카'도 새것처럼 완벽 유지·보수…"헤리티지가 미래 만든다"
1886년 첫 차부터 미래 콘셉트카까지…138년 역사 낱낱이 박물관서 전시
(펠바흐·운터튀르크하임[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지난 20일(현지시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주도 슈투트가르트에서 차로 약 30분을 달려 도착한 소도시 펠바흐.
이곳 메르세데스-벤츠 클래식 센터 정비소에 있는 올드카의 시동을 걸자 우렁찬 엔진음을 냈다.
이 차량은 1955년 만들어진 메르세데스-벤츠 300SL 6기통 쿠페. 70년이 지났지만 그릴과 타이어 휠 등 외관은 물론 계기판과 시트 등 인테리어까지 운행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도로를 주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벤츠 클래식 센터의 숙련된 정비사들이 2년여에 걸쳐 차량을 처음 공장에서 만들어졌을 때와 최대한 가깝게 되살려낸 덕분이다. '마지막 볼트 하나까지' 복원했다고 한다.
벤츠는 본사가 위치한 슈투트가르트에서 멀지 않은 펠바흐에 1993년 클래식 센터의 문을 열었다. 2006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도 같은 센터를 세웠고, 같은 해 펠바흐에서 차로 약 10분 떨어진 운터튀르크하임에 '벤츠 박물관'도 건립했다.
1886년부터 이어져 온 헤리티지(유산)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역사를 기억하며 미래의 발전을 이룬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클래식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헤리티지가 미래를 만들어낸다'는 글귀를 볼 수 있었다.
센터는 현재 벤츠 박물관의 전시 차량을 포함해 벤츠의 인증 클래식 차량 판매 서비스인 '올 타임 스타즈' 대상 차량 등 1천200여대의 벤츠 및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컬렉션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한다.
40여명의 정비사가 고객 의뢰에 따라 오래된 벤츠 차량을 수리하고, 고객들로부터 차량을 매입·복원해 재판매하기도 한다.
모든 차량과 부품마다 아카이브를 갖추고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다른 브랜드와 대비되는 벤츠만의 역량이라고 센터 관계자는 자부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역에 차량의 설계도를 나눠 보관하는 등 일련의 활동이 지금의 '복원 역량'으로 이어졌다.
센터를 소개한 마르쿠스 브라이트슈베르트 벤츠 헤리티지 총괄 수석부사장은 "벤츠 설립자 중 한명인 고틀리프 다임러의 모토가 '최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였다"며 "벤츠는 실패와 실수에서 배우고, 확실하게 개선을 이뤄내고자 하는 꾸준한 노력과 회복력에 기반한 브랜드"라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현재 20대의 차량이 복원 작업을 거치고 있었다.
이 중 1902∼1910년에 생산된 '메르세데스 심플렉스'가 눈에 띄었다. 40마력에 최고 시속 70∼80㎞까지 낼 수 있어 당시 독일 황제였던 빌헬름 2세가 찬사를 보냈을 정도의 고성능 모델이라고 한다.
센터 관계자는 "오늘날의 슈퍼카에 비견되는 차량"이라며 "정확히 언제 생산됐는지 알기 어려운 아주 옛날 차지만, 오는 11월 첫 주에 런던에서 열리는 클래식카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복원이 됐다"고 말했다.
벤츠가 1963∼1981년 생산한 대형 플래그십 세단 '벤츠 600'의 실물도 볼 수 있었다. '그랜드 메르세데스'라는 별명을 가진 이 차는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넌 등 여러 유명 인사와 전 세계 왕족 및 고위층의 애마였다고 한다.
센터는 비공식적으로 클래식카 주문을 받다가 지난 6월부터는 고객 상담사 5명을 두고 공식 판매에 나섰다.
부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벤츠 클래식카의 몸값는 어마어마하다. 벤츠의 1955년형 경주용차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는 2022년 무려 1억3천500만유로(2천9억원)에 거래돼 역사상 가장 비싼 차로 등극했다.
센터 관계자는 "보통 차량을 복원하는 데 평균 60만∼80만유로가 든다"며 "유명한 레이싱 선수가 탔다든지 특별한 역사가 있는 차들은 일반 차량보다 훨씬 더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센터 정비사들의 손을 거쳐 완벽하게 복원된 차들은 벤츠 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이 박물관은 연면적 1만6천500㎡에 연대별, 주제별로 총 160대의 차량과 1천500여개에 달하는 부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는 8층에서 나선형의 통로를 따라 한 층씩 내려오면서 벤츠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돌아보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었다.
1886년 설립자 칼 벤츠가 만든 사상 첫 내연기관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고틀리프 다임러의 세계 최초 4륜 자동차 '모터 마차'부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가 실제로 탔던 차량을 거쳐 전기차와 미래형 콘셉트 카까지 실물로 볼 수 있다.
1930∼1940년대 전시에서는 나치 독일에 협력해 군용 트럭과 항공기 엔진 등을 생산한 역사까지 숨기지 않고 보여줬다.
벤츠 박물관 관계자는 "벤츠는 브랜드 출범 후 37년 뒤인 1923년 운터튀르크하임 공장 부지에 처음으로 박물관을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확장과 이전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며 "기술과 디자인이 발전해 온 역사를 고객과 공유하며 그냥 자동차 브랜드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역사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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